저녁햇살 쬐는 마음
가을이 깊을수록 해가 짧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어 겨울로 접어들면 그야말로 해는 더 짧습니다. 아침이 늦고 저녁이 짧습니다. 바야흐로 일을 쉬고 몸을 포근히 눕히는 철입니다. 한두 달 앞서까지만 해도 느즈막한 낮이라고 할 만한 때이지만, 이제는 이슥한 저녁입니다. 저녁해는 늦가을일수록 더 짧고, 짧은 저녁해가 기울어 멧자락 너머로 사라지면 벌써 쌀쌀한 바람이 마당 가득 돌아다닙니다.
멧자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저녁해를 보면서 빨래를 걷습니다. 밥을 끓이고 국을 덥힙니다. 마루에서 햇살조각 받으면서 노는 아이는 마룻바닥을 콩콩 굴리면서 웃습니다.
우리는 모두 해와 함께 움직입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눕습니다. 해가 쨍쨍 내리쬘 적에 까르르 노래하면서 뛰고, 해가 아스라히 사라지면 조용히 눈을 감고는 꿈을 꿉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해님 기운이 가득합니다. 해님과 같이 따스하고, 해님과 같이 고르며, 해님과 같이 사랑스럽습니다. 저녁햇살을 쬐면서 저녁밥을 짓다가, 저녁놀이를 즐기는 저녁아이 몸짓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