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10.9.

 : 들바람 천천히 마시며



- 들바람 마시는 자전거마실을 나온다. 들바람을 마시는 마실이니 천천히 달린다. 천천히 달리다가 한동안 들 한복판에 멈추어 들내음을 맡는다. 바람이 불 적마다 샛노란 물결이 일어난다. 한가을에만 누릴 수 있는 빛물결이요 소리물결이다. 쏴아쏴아 흐르는 나락물결은 구수한 냄새와 함께 멋들어진 노랫소리인데, 샛노란 빛까지 어우러진다. 그리 넓지 않은 고흥 도화면 신호리 들녘이 이만 하다면, 훨씬 넓은 다른 고장 가을들에서는 얼마나 깊은 냄새와 소리와 빛이 어우러질까.


- 시골에는 높은 건물이 없다. 시골에 높은 건물을 짓는 사람은 없다. 멧자락이 우뚝 서지 않는다면, 시골에서는 어디에서나 확 트인 하늘을 만난다. 하늘이 더 높다고 하는 가을을 제대로 느끼려면 시골 들에 서야 한다. 파랗게 부서지는 하늘빛을 받는 들판에 서면서 비로소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콩닥 뛰는 소리를 듣는다.


- 억새밭을 지나면서 꽃순이는 억새를 한 포기 끊으려 하는데 쉽지 않다. 네가 용을 써야 끊겠지. 산들보라는 수레에서 잠든다. 면소재지에 닿아 초등학교 놀이터에 간다. 올해부터 한글날은 쉬는날이니까, 초등학교도 쉴 테고, 우리 아이들이 낮에 놀이터에 가도 되겠지.


- 사름벼리는 놀이터에서 땀을 뻘뻘 내면서 달린다. 폭 잠든 산들보라가 내처 잘 듯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든다. 놀이터까지 마실을 하는 줄 아는 산들보라는, 오늘도 또 수레에서 잠들며 놀이터에서 못 놀까 봐 걱정을 했구나 싶다. 졸음을 잔뜩 머금은 몸으로 어기적거리면서 수레에서 내린다. 누나한테 쪼르르 달려간다. 놀이란 이렇게 힘이 세구나.


- 뉘엿뉘엿 기우는 해를 바라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이다. 더 놀고 싶어 입술을 삐쭉 내미는 사름벼리를 겨우 달랜다. 얘야, 여름은 끝났어. 이제 가을이야. 해가 떨어지면 갑자기 춥지. 시골은 더 추워. 얼른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네 몸에서 땀이 다 식어서 몸살이 들어. 달래고 달래서 집으로 가는 길에 해는 벌써 떨어지고, 놀이순이는 춥다고 개미 기어가는 소리를 낸다. 춥지?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따순 물로 씻고 따순 국 끓여서 먹자. 마을 할매와 할배는 해 기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락을 비닐로 다시 덮느라 부산하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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