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밝혀 읽는 《비천무》



  《비천무》를 읽은 지 퍽 오래되어 줄거리가 하나도 안 떠오른다. 줄거리조차 하나도 안 떠오른다면 ‘안 읽은 셈’이라고 여겨, 아예 만화책을 새로 장만한다. 한 질 갖추었지만, 이 작품은 한 질 더 갖출 만하다고 여긴다.


  가을이 깊으면서 내 코는 더 막히면서 괴롭다. 아이들 사이에 누우려 했지만, 코가 막혀 숨을 못 쉬니, 아이들이 잠들려 하는데 킁킁 막히는 소리 때문에 아이들이 잠을 못 이룬다고 느낀다. 하는 수 없이 누웠다가 일어나서 방을 서성이다가 코를 끝없이 풀다가, 조그마한 불을 켜고 책이라도 넘기기로 한다. 코가 나아질 때까지 졸음을 쫓으면서 견디기로 한다.


  만화책 《비천무》 여섯 권 가운데 다섯 권을 곧 읽는다. 두 시간쯤 흐른다. 이제 마지막 여섯 권을 읽으면 끝이다. 여섯 권까지 마저 읽으면 코가 살짝 뚫려, 한쪽 코로라도 숨을 쉬면서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


  수술을 해도 나을 수 없는 코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숨을 못 쉬는 일’을 모르리라. 수술로는 고칠 수 없으니, 수술 아닌 것으로 고쳐야겠지. 내가 곁님이랑 아이들하고 시골에서 살지 않았으면 이 코는 훨씬 나빴으리라. 바람과 물이 맑은 시골에서 살기에 이럭저럭 숨도 쉬고 일도 할 수 있으리라.


  김혜린 님이 빚은 아름다운 만화 《비천무》를 곰곰이 되새긴다. 살려 하지만 살지 못하는 사람과, 죽으려 하나 죽지 못하는 사람과, 삶과 죽음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면서 가슴에 응어리와 사랑을 품은 채 즐겁게 웃지 못하는 사람을 헤아린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한다. 삶을 버리거나 놓지 말아야 한다. 씩씩하게 한길을 걸어야 한다. 실타래를 풀고, 응어리는 끊으며, 사랑을 다스리면서 살아야 한다. 삶이 삶으로 뿌리를 내려야, 죽음은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이 될 수 있다. 이 나라에 《비천무》라는 만화책이 있어 우리는 ‘한국만화’를 기쁘게 이야기할 수 있다. 4347.10.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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