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삯만 들고 부산마실
2014년에도 어김없이 부산 보수동에서 ‘책방골목 책잔치’를 연다. 첫 해부터 지난해까지 해마다 ‘사진잔치’를 보수동에서 했다. 올해에는 ‘사진을 만들 돈’이 그야말로 한푼도 없어 처음으로 사진잔치를 거른다. 둘레에서 돈을 빌려 사진잔치를 할까 싶기도 했으나 그만둔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벌이는 책잔치도 어느 만큼 자리를 잡았으니, 굳이 빚을 지면서 ‘보수동 책방골목 사진’을 만들지는 말자는 생각이 든다.
올해부터는 굳이 가지 말자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안 가자니 여러모로 서운하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하고픈 일이 한 가지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보수동에 갈 찻삯만큼은 마련하자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말 찻삯은 이럭저럭 여러 가지 바깥일을 해서 벌었다. 다만, 보수동에 가더라도 책을 살 돈은 없다.
애써 책방골목까지 가는데 책 살 돈이 없으면 너무 허전할까. 새벽바람으로 고흥을 떠나 순천을 거쳐 부산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 아름다운 손길을 뻗어 나한테 ‘책 살 돈’을 살포시 선물로 흩뿌려 줄까. 십이월 이십오일에 찾아오는 산타클로스가 아닌 시월 가을 한복판에 찾아오는 산타클로스가 되어.
곁님과 아이들 먹을 밥은 지었다. 이제 나물무침 하나를 뚝딱 썰어서 하자. 그러고는 짐을 꾸려 길을 나서자. 아이들이 오늘도 새벽 일찍 일어난다면 아이들한테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서야지. 4347.10.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