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325) 청하다請 1


답답하고 고민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렴

《서갑숙-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중앙m&b,1999) 278쪽


 도움을 청하렴

→ 도움을 바라렴

→ 도움을 받으렴

→ 도와 달라고 하렴

 …



  외마디 한자말 ‘請하다’는 “남에게 부탁을 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말사전에서 다른 한자말 ‘부탁(付託)’을 찾아보니,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청하거나 맡김”을 뜻한다고 나와요. 한국말사전 말풀이대로 하자면, ‘청하다 = 부탁하다’요, ‘부탁하다 = 청하다’인 꼴입니다.


  한국사람은 한자를 쓴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임금과 신하와 지식인 같은 사람은 한자를 썼으나, 이 나라를 이룬 거의 모든 사람은 ‘한자말’ 아닌 ‘한국말’을 썼어요. ‘請’이든 ‘付託’이든 이 나라에 들어오지 않았을 적에 어떤 낱말로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을까 헤아려 봅니다.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다

→ 동무한테 도움을 바라다

→ 동무한테 도와 달라 하다

 주인에게 물 한 그릇을 청하다

→ 주인한테 물 한 그릇을 바라다

→ 주인한테 물 한 그릇 달라 하다


  외마디 한자말 ‘請하다’는 “사람을 따로 부르다”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부르다’라 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집에 청해서”가 아닌 “집에 불러서”로 적어야 올발라요. 4337.8.12.나무/4347.10.14.불.ㅎㄲㅅㄱ



청(請) :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남에게 부탁을 함

청하다(請-)

 (1)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남에게 부탁하다

   -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다 / 주인에게 물 한 그릇을 청하다

 (2) 사람을 따로 부르거나 잔치 따위에 초대하다

   - 동네 사람들을 집에 청해서 음식을 대접하셨다

 (3) 잠이 들기를 바라다. 또는 잠이 들도록 노력하다

   - 잠을 청하다 / 낮잠이라도 청하고 있는 모양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395) 청하다請 2 : 잠을 청할 수 없다


하지만 저는 ‘기이욘’ 하는 맑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아 쉽사리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구로야나기 데츠코/김경원 옮김-토토의 눈물》(작가정신,2002) 27쪽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 잠이 들 수 없었습니다

→ 잠잘 수 없었습니다

→ 잘 수 없었습니다

→ 자지 못했습니다

→ 못 잤습니다

 …



  잠을 자기도 하지만 잠이 들기도 합니다. 잠에 빠지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잠을 ‘청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자는지 돌아봅니다. 자는 모습을 헤아리고, 자는 몸짓을 살펴서, 알맞고 즐겁게 여러모로 우리 모습을 그립니다. 4339.2.1.물/4347.10.1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렇지만 저는 ‘기이욘’ 하는 맑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해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로 다듬고, “맴도는 것 같아”는 “맴도는 듯해”로 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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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576) 청하다請 3


잠을 청했으나 벌레가 마구 달려들어 견딜 수가 없다

《체 게바라/안중식 옮김-체의 마지막 일기》(지식여행,2005) 50쪽


 잠을 청했으나

→ 잠을 자려고 했으나

→ 자려고 누웠으나

→ 자려고 했으나

 …



  밥은 먹고, 물은 마시고, 옷은 입고, 신발은 신으며, 모자는 쓰고, 힘들어서 쉬고, 연락은 하고, 잠은 잡니다. 그렇지만 요즈음 들어 이처럼 때와 곳에 맞게 잘 나누어 쓰던 말투가 사라지고, 온갖 외마디 한자말이 춤을 춥니다. 


  그러고 보면, “수면(睡眠)을 취(取)하다”처럼 말하는 분들까지 제법 됩니다. 그러니까 꾸밈없이 쓰던 말이나 누구나 알기 쉽게 쓰던 말인 “잠을 자다”는 하루하루 쓰임새가 줄어드는 노릇입니다.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셔요. 우리는 아이들을 재우려고 눕힙니다. 아이들은 자리에 누워 잠을 자려고 합니다. 꾸밈없이 쉽게 말하고 즐겁게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9.7.10.달/4347.10.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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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827) 청하다請 4


슬라이드 제작을 위한 자금이라면 나 개인적으로도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었기에, 꽤 알아주는 기록영화 감독인 쓰치모토 노리아키 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응노·박인경·도미야마/이원혜 옮김-이응노―서울·파리·도쿄》(삼성미술문화재단,1994) 9쪽


 도움을 청했다

→ 도움을 빌었다

→ 도와 달라고 했다

→ 손을 벌렸다

→ 손을 뻗었다

 …



  보기글에서는 “노리아키 씨가 도와주기를 바랐다”고 쓸 수 있습니다. 도움을 받으려고 애쓰는 모습은 저마다 다를 테니, 어떻게 도움을 바랐는가 적을 수도 있어요. “노리아키 씨한테 여러 차례 편지를 써서 도와 달라고 했다”라든지, “노리아키 씨를 끈질기게 찾아서 고개숙여 도와 달라고 빌었다”라든지 말입니다.


  알맞게 가다듬는 말투와 깨끗하게 추스르는 낱말과 올바로 살피는 말법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말투와 낱말과 말법을 잘 건사하면서 언제나 ‘내 삶을 내 말에 담기’까지 마음을 기울일 수 있으면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까닭은 내 마음을 말이나 글에 담아 이웃이나 동무하고 즐겁게 생각을 꽃피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이웃이나 동무하고 즐겁게 생각을 꽃피우려면 어떤 말이나 글을 써야 할까요? 딱딱하거나 어려운 말을 써야 하지 않겠지요. 차갑거나 메마른 말을 쓸 일이란 없겠지요. 4340.2.19.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슬라이드를 만들 돈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었기에, 꽤 알아주는 기록영화 감독인 쓰치모토 노리아키 씨한테 도와 달라고 했다


“슬라이드 제작(製作)을 위(爲)한 자금(資金)”은 “슬라이드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이나 “슬라이드를 만들 돈”으로 고치면 좋아요. “나 개인적으로도”는 “내가”로 고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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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33) 청하다請 5


즐거운 일을 떠올리면서 잠을 청하려고 해도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요

《안비루 야스코/송소영 옮김-누구나 할 수 있는 멋진 마법》(예림당,2012) 53쪽


 잠을 청하려고 해도

→ 잠을 부르려고 해도

→ 잠을 자려고 해도

→ 잠이 들려고 해도

→ 자려고 해도

 …



  잠을 자려고 애쓰지만 잠이 안 올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잠아! 나한테 와 다오!” 하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글월에서는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아도”처럼 손볼 수 있습니다. “잠이 들고 싶어 눈을 감지만”처럼 손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4347.10.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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