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할머니 저학년 책내음문고
파울 마르 지음, 유혜자 옮김, 프란츠 비트캄프 그림 / 책내음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69


 

우리 곁 슬기로운 이웃

― 기차 할머니

 파울 마르 글

 프란츠 비트캄프 그림

 유혜자 옮김

 중앙출판사 펴냄, 2000.3.15.



  파울 마르 님이 글을 쓰고, 프란츠 비트캄프 님이 그림을 넣은 《기차 할머니》(중앙출판사,2000)는 2013년에 새로운 출판사(책내음)를 만나서 다시 나옵니다. 널리 사랑받는 어린이책이니, 이렇게 꾸준히 나올 수 있구나 싶습니다.


  어린이문학 《기차 할머니》는 어린이가 혼자 기차로 나들이를 떠나는 길에 만난 할머니와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쪽 도시에서 저쪽 도시로 기차 나들이를 떠나는 어린이는 ‘젊은 사람’과 나란히 앉아서 가기를 바라지만, 아이는 젊은 사람하고는 함께 앉지 못합니다. 자리가 없네요. 아이가 앉을 만한 빈자리는 할머니 옆입니다.


  아이는 ‘늙은 사람’ 옆에 앉아야 하니, 기차를 타고 여러 시간 달리는 길이 따분하거나 싫으리라 지레 생각합니다.


  아마, 따분하거나 싫을 수 있겠지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늙기에 따분할 만할까요? 나이가 젊지만 생각이 굳거나 닫히거나 막힌 사람일 때에 따분하거나 괴롭지 않을까요? 우리가 바라볼 모습이란 ‘나이’라는 숫자가 아닌, 삶을 사랑하거나 가꾸거나 아끼는 ‘숨결’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그럼 가까운 곳으로 함께 갔다 와요.” 울리가 조르자,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아니, 그것도 안 돼!” “그렇지만 난 어디든 가고 싶어요.” “그럼 너 혼자 가렴.” 엄마가 말했어요. “좋아요. 그럼 나 혼자 갈게요.” ..  (14쪽)



  슬기로운 사람은 슬기롭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으려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알아채거나 느끼지 않으니, 아름다운 길을 걷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으려고 하는 만큼, 사랑과 꿈을 키우고 싶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찾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터라, 사랑도 꿈도 모두 동떨어진 채 살아요.


  다만, 그뿐입니다. 슬기롭다고 해서 훌륭하지 않고, 어리석대서 나쁘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슬기로울 뿐이기에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꿈으로 나아갑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을 뿐이기에 어리석은 길에서 헤맵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떤 길을 걸으면 즐거울까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길로 접어들 때에 활짝 웃을 만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기쁘게 노래하거나 춤을 출 만할까요.



.. “차표를 찾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울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요.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이런저런 경험이 많지. 차표를 잃어버린 적이 나도 백 번은 넘을 거야. 그렇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까 물건을 찾는 방법도 알게 되더구나.” ..  (49쪽)



  어린이책 《기차 할머니》에 나오는 할머니는 차분하면서 따사롭게 아이를 맞이합니다. 차표를 어디엔가 잃은 아이를 찬찬히 달래면서 어디에서 잃었고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하고 함께 생각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차표를 찾도록 도운 다음에는, 아이한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슬기로운 마음을 밝힐까요? 할머니는 어릴 적에 이녁 어머니와 할머니한테서 슬기로운 넋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기차 나들이를 하는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지낼까요? 아이는 이날 처음으로 깨달은 ‘늙은 사람 슬기와 재미와 웃음’을 마음으로 깊이 담으면서 새롭게 눈을 뜨겠지요.


  아이는 언제까지나 아이로 살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른으로 자랍니다. 아이는 젊은이도 되고 늙은이도 됩니다. 아이는 천천히 깨닫습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하면, 어린이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모두 똑같이 아름다운 숨결인 사람’인 줄 깨닫습니다.


  오늘날에는 할머니가 얼마나 슬기로울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할머니는 한국이건 일본이건 유럽이건 모두 텔레비전에 얽매일 텐데, 텔레비전에 얽매이는 할머니는 얼마나 슬기로울는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전에 얽매이는 어린이는 맑은 넋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텔레비전에 얽매이는 젊은이는 푸른 넋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텔레비전에 얽매이는 여느 어른이나 할매나 할배는 어떠할까요? 이들은 슬기로운 넋이 될 수 있을까요?



.. “그래? 그럼, 내가 나이를 제대로 봤구나. 너도 안드레아스처럼 옛날이야기 듣는 것 좋아하니?” 할머니가 물었어요. “어떤 이야기인데요?” 울리가 물었어요. “안드레아스는 내가 어린 시절 살아온 이야기를 해 주면 제일 좋아하지.” … “내가 어렸을 때는 텔레비전이 없었거든. 그래서 심심하니까 형제들끼리 하는 놀이를 많이 했지. 가끔은 다른 사람들에게 짓궂은 장난도 쳤고.” ..  (52, 75쪽)



  우리 곁에 슬기로운 이웃이 있습니다. 전화기를 끄고 옆을 둘러보아요. 우리 둘레에 아름다운 이웃이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끄고 둘레를 살펴보아요. 우리 가까이에 사랑스러운 이웃이 있습니다. 책을 덮고 두리번두리번 헤아려요.


  할머니도 슬기로운 이웃입니다. 나무 한 그루도 슬기로운 이웃입니다. 풀 한 포기와 새 한 마리와 개구리 한 마리도 모두 슬기로운 이웃입니다. 이 지구별을 이루는 따사로운 이웃은 저마다 슬기로우면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스스로 슬기로운 이웃이 되어 내 곁에 있는 사람들한테 따사로운 사랑을 나누어 줍니다.


  활짝 웃고 노래해요. 기쁘게 춤추면서 어깨동무를 해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랑이 태어납니다. 4347.10.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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