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62. 너랑 내가 좋아서



  길을 가는 사람 아무한테나 사진기를 들이미는 사람이 더러 있을 테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은 굳이 아무한테나 사진기를 들이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끌려야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없는데 이 사람도 찍고 저 사람도 찍는다 한들, 이렇게 찍어서 ‘건질 사진’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길을 가는 누구나 사진에 찍힐 수 있습니다. 누구나 모델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모델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골라서 사진을 찍는 일이란, 사진을 찍는 사람 마음입니다. 오늘은 이 사람을 찍을 만하고, 이튿날은 저 사람을 찍을 만하며, 그 다음날에는 그 사람을 찍을 만합니다. 어떤 사람을 사진으로 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찍으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길에서 만난 연예인한테 눈길이 사로잡혀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사람은 동냥을 하는 아저씨한테 눈길이 사로잡혀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시에서 아주 수수하다 보이는 사람한테 눈길이 사로잡혀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사람은 할머니한테 눈길이 사로잡히고, 어떤 사람은 어린이한테 눈길이 사로잡힙니다.


  사진을 찍는 길은 한 갈래가 아니니, 이렇게도 찍을 만하고 저렇게도 찍을 만합니다. 사람을 찍을 적에 사람을 보면서 찍을 수 있을 테고, 사람을 찍지만 그림이 될 만하다 싶은 모습을 찾아서 찍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어떻게 찍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다만, 어떻게 찍든 ‘내가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은 ‘내 이야기’가 없다면, ‘사진’이라는 이름을 못 붙입니다.


  서울사람은 부산에도 가고 광주에도 갈 수 있습니다. 일본에도 가고 중국에도 갈 수 있습니다. 어디에나 갈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든 가고 싶은 대로 갈 노릇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행’을 간다고 할 적에는 ‘나 스스로 누리고 싶은 바깥바람을 쐬어야’ 비로소 여행입니다. ‘내가 사는 터전’에서 멀리 벗어난대서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이야기를 길어올리면서 삶을 짓거나 누릴 때에 비로소 여행입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살며 그저 서울에서 맴돌더라도, 날마다 내 나름대로 즐겁게 이야기를 길어올리면서 삶을 짓거나 누리는 사람은 ‘내 집이나 내 동네에서 천천히 돌아다녀’도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이나 아이슬란드까지 가지 않아도 ‘여행’이요, 배를 타고 여러 날 바다를 가르더라도 ‘여행이 아닐’ 수 있어요.


  이야기는 너랑 내가 좋아서 이루는 노래입니다. 이야기는 너랑 내가 좋아서 일구는 꿈입니다. 이야기는 너랑 내가 좋아서 새롭게 짓는 사랑입니다. 4347.10.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 찍는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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