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74] NAVER와 한글박물관
예수님 나신 날이 다가오면 도시 곳곳에 알록달록 나무를 세웁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우면 절집 둘레에 알록달록 등불을 겁니다. 예수님 나신 날을 기리는 나무와 부처님 오신 날을 섬기는 등불은 꽤 오래 그 자리를 지킵니다. 그런데, 한글날을 맞이해서 한글을 기린다고 하는 이들은 시월 구일 하루만 반짝거리다가 사그라듭니다. 이를테면 한 해 내내 영어사랑으로 치닫던 누리그물인 ‘NAVER’나 ‘DAUM’ 같은 곳은 시월 구일 하루만 ‘네이버’와 ‘다음’처럼 무늬만 한글로 바꿉니다. 시월 시일이 되면 도로 ‘NAVER’나 ‘DAUM’으로 돌아가요. 마치 해마다 하루만 반짝 놀다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깊이 나아가거나 널리 헤아리지 않아요. 해마다 새롭게 거듭나거나 자라는 모습이 없어요. 해마다 판박이 같은 시늉을 하면서 한글사랑을 자랑합니다. 나라에서도 엇비슷합니다. 2014년에 한글박물관이라는 커다란 집을 지어서 문을 열기는 합니다만, 다른 한쪽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집어넣겠다고 또 설레발을 칩니다. 한국말을 알뜰히 가다듬는 일조차 안 하면서, 막상 한글마저 짓밟는 셈입니다. 이럴 바에는 뭣 하러 한글박물관을 큰돈 들여 지을까요. 나라에서 스스로 한글이든 한국말이든 제대로 가꾸거나 아름답게 지키려는 생각이 없다면. 4347.10.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