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9.24.

 : 가을비 살짝 멎은 날



- 비가 제법 쏟아지는 날, 부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우체국에 다녀오기도 해야 하지만, 차가운 가을비가 내린다고 하루 내내 집에서만 노는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마실을 다녀오고 싶다. 비가 가늘어졌다가 다시 내리다가, 해가 방긋 나왔다가 부슬부슬 흩뿌리다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바라본다. 이러다가 삼십 분 즈음 비가 멎은 하늘을 가만히 살핀다. 비가 다시 오더라도 가 보자고 생각한다.


- 낮잠을 건너뛰고 놀던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바로 곯아떨어진다. 이렇게 고단했으면서 왜 집에서는 안 자고 그렇게 버티었니. 꼭 아버지가 비 오는 날에도 자전거를 태워 주어야 잠을 자니.


- 큰아이는 비옷을 입는다. 비가 그쳤어도 길바닥에는 빗물이 마르지 않았으니 자전거가 달리면서 물이 튀겠지. 나는 비옷을 안 입는다. 내 비옷은 수레 바닥에 댄다. 빗길을 달리며 물이 튀면 수레바닥이 젖으니, 작은아이가 앉은 수레에 빗물이 스미지 않도록 이곳에 비옷을 놓는다.


- 비가 멎은 시골길은 구름과 안개가 호젓하다. 조용한 길에 바람소리와 빗내음이 물씬 어우러진다. 비가 안 오고 맑은 날에 타는 자전거는 그런 자전거대로 즐겁고, 비가 살짝 멎은 때에 빗내음을 마시며 달리는 자전거는 이런 자전거대로 재미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묵은 밭을 본다. 묵은 밭 곳곳에 돋은 서숙을 본다. 누가 따로 심지 않았을 텐데 서숙이 스스로 올라왔다. 아마 예전에 이곳을 서숙밭으로 가꾸었을 때에 서숙을 베면서 낟알이 조금 떨어졌겠지. 그때 떨어진 서숙알이 올봄부터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려 이렇게 익었겠지. 묵은 밭 서숙 한 포기를 뽑는다. 묵은 밭이란 임자가 없는 밭인데, 몇 해 앞서까지 이 밭을 일구던 할매나 할배는 어떻게 지내실까. 조용히 숨을 거두셨을까.


- 큰아이와 조금 걷는다. 큰아이가 손이 시렵다고 한다. 나는 괜찮지만, 아이들은 이런 날씨에 자전거를 타면 손이나 몸이 많이 춥구나.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작은아이는 안 깬다. 십 분 즈음 천천히 들길을 걷다가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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