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삶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이라면, 어른도 함께 배워야 하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시골에서 두 아이를 돌보며 사는 동안 늘 느낍니다. 아이한테만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가르치면서 어버이인 나도 아이와 함께 배웁니다. 그러니까, 어른인 나 스스로 즐겁게 배워서 사랑스럽게 삶을 가꿀 이야기를 아이한테 가르치는 셈입니다. 아니, 아이한테 가르친다기보다 ‘물려준다’고 해야 옳습니다. 물려준다기보다도 ‘보여주’거나 ‘함께 나누’거나 ‘나란히 즐긴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는 무엇을 배울 때에 즐거울까요? 삶을 배울 때에 즐겁겠지요. 아이는 옆에서 어른들이 어떻게 가르칠 적에 즐거울까요? 활짝 웃고 노래하는 따사로운 마음으로 가르칠 때에 즐겁겠지요. 졸업장을 거머쥐려는 입시 시험이 아닌 삶을 스스로 가꿀 수 있는 슬기로운 길을 아이와 함께 가르치고 배우면서, 내 보금자리와 우리 마을을 함께 북돋우는 삶이 될 때에, 참다운 배움을 이루리라 느껴요.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모두 ‘배우는 책’입니다. ‘가르치는(교훈) 책’이 아닙니다. 삶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며 꿈을 배우도록 이끄는 책이 바로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이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보면서 즐거운 까닭은, 삶과 사랑과 꿈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도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즐겁게 느낀다면, 삶과 사랑과 꿈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새롭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어린이문학을 놓고 ‘교훈’이 있어야 하느냐 없어도 되느냐 하고 다투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어린이문학은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문학이 아니지 싶습니다. 어린이문학은 누구나 즐겁게 배우는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도 배우고 나도 배우는 문학이에요. 어린이도 배우고 어른도 배우는 문학입니다.
어린이문학을 읽으면서 ‘삶을 즐겁게 배우는 어린이’는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차근차근 헤아립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바라보며 스스로 제 길을 찾아서 걷습니다. 지식을 배우거나 정보를 얻도록 하는 어린이책이 아니라, 삶과 사랑과 꿈을 배우도록 하면서,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서거나 걷도록 돕는 어린이책입니다.
어린이책을 쓰는 어른은,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어린이책을 아이한테 선물하면서 함께 읽는 어른은,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 배우면서 함께 자라려는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도 자라고, 어른도 자랍니다. 아이는 몸과 마음이 자라고, 어른은 몸과 마음이 한결 튼튼하게 거듭납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어린이문학을 읽으면서 말을 새롭게 배웁니다. 어른들도 어린이문학을 읽으면서 ‘어떤 말로 생각을 지어서 아이와 함께 나눌 때에 즐거운가’ 하고 살피면서 말을 새롭게 배웁니다. 삶과 사랑과 꿈도 언제나 새롭게 배우고, 말과 글도 언제나 새롭게 배웁니다. 배움은 고이지 않습니다. 배움은 흐릅니다. 어릴 적부터 어떤 낱말이나 말투가 익숙하다고 해서, 이런 낱말이나 말투를 언제까지나 써도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한테는 익숙하지만 알맞지 않거나 올바르지 않은 낱말이나 말투가 있기도 해요. 이때에는 ‘아이가 말을 새롭게 배우’듯이 ‘어른도 말을 새롭게 배워’야 옳습니다. 이제껏 잘못 쓰거나 얄궂게 쓴 낱말과 말투를 내려놓고, 앞으로는 옳고 바르면서 알맞게 쓸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새로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자랍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날마다 즐겁게 자랍니다. 어른들도 날마다 즐겁게 자라려 한다면 언제나 새롭게 배우면 됩니다. 이웃이 지내는 삶을 배우고, 내가 나아갈 꿈을 배웁니다.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배우고, 내 꿈을 이루도록 씩씩하게 걸어갈 길을 배웁니다. 아름답게 노래할 말을 배우고, 사랑스레 써서 주고받을 글을 배웁니다. 4347.9.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