쐐기벌레 책읽기
뒤꼍에서 풀을 베고 감나무에 얽힌 덩굴을 뜯는데 쐐기벌레가 오른손등에 내려앉는다. 쐐기벌레는 어디에서 무엇을 먹다가 내 오른손등으로 왔을까. 쐐기벌레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내 오른손등에 내려앉았을 뿐인데, 오른손등이 무척 따갑다. 그래서 손등을 휘휘 털어 보려는데 안 떨어진다. 입김으로 후후 부니 비로소 떨어진다. 쐐기벌레가 앉은 오른손등이 붓는다.
쐐기벌레한테 쏘인 지는 꽤 오랜만이라고 느낀다. 얼추 서른 해 만인 듯싶다. 아주 조그마한 쐐기벌레였는데, 머잖아 나방으로 깨어날 테지. 가시 같은 털이 오돌토돌 돋고 까만 점이 박힌 쐐기벌레를 살며시 바라보았는데, 빛깔이나 무늬는 고왔다. 이렇게 고운 아이인데 그저 손등에 앉기만 해도 엄청나게 전기가 오듯이 따갑구나.
쐐기벌레한테 쏘인 자리는 물이 닿으면 더 따갑다. 그렇다고 밥을 안 하거나 설거지를 안 할 수 없다. 빨래를 안 할 수 없고, 아이들을 안 씻길 수 없다. 붓기가 가라앉은 뒤 이것저것 하는데, 물이 닿을 적마다 따끔따끔 찌릿찌릿 온몸이 울린다. 아이고 따갑네 하고 속으로 울면서 어릴 적을 돌아본다. 열 살 즈음 쐐기벌레한테 쏘였을 적에 어떻게 견디었을까. 어릴 적에 이 따가움을 어떻게 느꼈을까. 며칠 동안 따가움을 못 견디면서 아무 놀이도 못 하고 붓기가 가라앉고 따가움이 사라질 때까지 그저 얌전히 기다리지 않았을까. 쐐기벌레가 오른손등에 내려앉았을 때 불현듯 서른 해 앞서 어릴 적 일이 떠올랐다. 4347.9.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