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53. 한 장이어도 좋아라



  예전에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던 때에, 내가 아무리 잘 찍었어도 현상소에서 필름을 잘못 만지면 꽝 하고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현상소 일꾼은 수많은 사람들이 찍은 수많은 필름 가운데 하나이지만, 나로서는 내가 살아가면서 누린 애틋한 이야기를 갈무리해서 담은 필름입니다. 그래서, 적잖은 사람들은 필름사진은 스스로 현상하고 인화하는구나 싶은데, 손수 현상하고 인화를 하더라도 그만 잘못 만져서 사진을 날릴 수 있습니다. 내가 하든 남이 하든, 사진을 날릴 적에는 똑같습니다.


  디지털파일로 사진을 찍는 요즈음, 이웃이 ‘사라진 사진 되살리는 풀그림’을 알려주었습니다. 메모리카드에서 지워지거나 사라진 사진을 새록새록 되살리는 풀그림이 있더군요.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가 쓰는 컴퓨터도 이와 같아요. 파일을 지운다고 하더라도 자국이 남는다고 해요. ‘포맷’을 해도 웬만큼 되살릴 수 있다지요.


  얼마 앞서 잘못 손을 놀리는 바람에, 아직 컴퓨터로 옮기지 않은 ‘메모리카드에 있는 사진’을 그만 수백 장 날렸는데, ‘사라진 사진 되살리는 풀그림’으로 모두 되찾았습니다. 허허 하고 웃으면서 문득 생각했어요. 이 사진은 내 눈앞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진은 오직 내 마음에만 남을 수 있습니다. 사라진 사진이란, 이웃한테 보여주지 못할 사진이거나 아이들한테 남겨 주지 못할 사진이라 할 테지만, 내 마음에는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어요.


  날마다 사진을 새롭게 찍으면 날마다 새로운 사진이 쌓입니다. 그러나, 예전에 찍은 사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켜켜이 쌓인 자리에 고스란히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지난 어느 모습을 떠올리면, 그무렵 즐겁거나 애틋했던 이야기가 모두 넘실넘실 되살아납니다.


  집에 불이 나서 모두 불길에 타서 사라진다 하더라도 씩씩하게 새로 일어서는 사람이 많아요. 일이 잘못되어 돈도 집도 모두 사라진다 하더라도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많아요. 이들은 어떻게 씩씩하거나 꿋꿋할 수 있을까요? 이들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기에 이렇게 새로 힘을 차릴 수 있을까요?


  바로 꼭 한 가지가 가슴에 있기 때문이지 싶어요. 즐겁게 누린 사랑을 가슴에 한 가지 담았기에, 두 손은 빈털터리라 하더라도 마음은 넉넉하니까, 얼마든지 다시 일어서거나 새로 일어설 만하지 싶어요.


  사진은 한 장이어도 좋습니다. 애써 찍은 사진이 모두 사라지더라도, 꼭 한 장만 있어도 좋습니다. 그예 마지막 사진 한 장마저 사라지더라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 손에서 사진을 모두 빼앗더라도 내 마음에 아로새긴 사진은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깊이 아로새겼기에 지워질 수 없습니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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