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레 읽어 주는 책



  훌륭하다는 책이 많습니다. 추천도서도 많고, 명작도서도 많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온갖 책을 장만해서 읽힐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우리 눈길을 사로잡을 아름답거나 멋진 책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름다운 모든 책을 다 챙겨서 읽을 수 있습니다. 훌륭하다는 온갖 책을 알뜰히 챙겨서 읽을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한테는 어떤 책이 마음에 깊이 남을까요?


  그때그때 느낌이 다를 테니, 어느 날에는 이 책이 마음에 남을 테고, 다른 날에는 저 책이 마음에 남을 만합니다. 그런데, 이 책도 저 책도 아닌 ‘바로 그 책’이 늘 마음에 남을 수 있어요.


  훌륭하다는 책이 아닐 수 있고, 명작도서도 추천도서도 아닐 수 있으며, 거의 이름이 안 알려진 사람이 쓴 책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책 하나가 내 마음에 아주 오랫동안 남아서 언제라도 새로운 기쁨과 이야기를 나누어 주곤 합니다.


  무슨 힘일까요? 무슨 숨결일까요? 무슨 넋일까요?


  백만 권쯤 팔린 책이기에 내 마음에 남을 만하지 않습니다. 천만 권쯤 팔린 책이라서 내 마음에 남을 만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나를 돌보던 어버이가 따사로우며 너그럽고 보드라운 사랑을 담아서 나긋나긋 읽어 준 책 하나가 내 마음에 남을 만합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나한테 내 어버이가 따사로우며 너그럽고 보드라운 사랑을 담아서 고운 종이에 싸서 가만히 선물한 책이 오래오래 내 마음을 채울 만합니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책은 어떤 책일까요? 어린이는 어떤 책을 좋아할까요? 네, 어린이가 좋아하는 책은,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살가운 목소리로 즐겁게 읽어 주는 책입니다.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면서 아끼는 책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 따사로운 눈길로 사랑스레 읽어 준 책입니다.


  어릴 적에 이러한 책을 만난 푸름이는 ‘책’을 떠올릴 적에 무엇보다 ‘따스한 사랑’을 그립니다. 어릴 적에 이러한 책을 만난 사람이라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스스로 삶을 꾸리거나 지을 적에 ‘따스한 사랑을 담은 책’을 곁에 두고서 마음밥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어린이한테 건네는 책 하나는 매우 큽니다. 아무 책이나 함부로 건넬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훌륭하다는 책만 건넨다고 일이 끝나지 않아요. 여러 사람들이 추천하거나 권장하는 책을 아이한테 읽혀 주었다고 일이 다 되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히려 할 적에는 늘 사랑으로 읽혀야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나이가 되었으면, 아이한테 사랑을 담아 책을 선물해야 합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푸름이 나이가 되었으면, 이때에도 교과서나 참고서나 문제집 말고,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북돋우는 아름다운 책을 사랑스러운 손길로 건넬 수 있는 어버이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시험공부를 하도록 돕는 교재는 시험이 끝나면 모두 잊히거나 사라집니다. 마음을 살찌우는 사랑을 담아서 건넨 책은 시험이 끝나도 언제까지나 이어집니다. 생각을 북돋우는 꿈을 실어서 선물한 책은 아이가 자라 마흔 살이 되거나 여든 살이 되어도 애틋하게 가슴에 남아서 즐겁게 웃음꽃 피우도록 돕는 햇볕으로 자리잡습니다. 4347.9.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