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곯아떨어져야지
이제 곧 곯아떨어지려 한다. 몸이 아주 많이 고단하면 오히려 잠이 제대로 안 오기도 한다. 살림돈을 벌 생각으로 아주 빠듯하게 부산에 바깥일을 하러 다녀오느라 며칠 잠을 미루었고, 살림돈을 버는 바깥일이라지만 온마음을 쏟아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운 터라, 일을 마치고 난 뒤에는 그야말로 힘이 쪽 빠졌다. 고흥으로 돌아온 뒤 이틀에 걸쳐 손님을 맞이한다. 반가우면서 즐겁게 손님을 맞이하려 하니, 없는 힘을 다시 끌어올렸고, 없는 힘을 새롭게 지어서 끌어올리다 보니, 어제는 아이들과 함께 퍽 일찍 까무룩 잠든 뒤 모처럼 네 시간 즈음 쓰러지듯 눈을 붙인 듯하다. 해야 할 여러 일이 있어 밤에 살짝 눈을 뜬다. 흙을 만지는 흙지기가 날마다 흙을 만지듯이, 한국말사전 새로 엮는 일을 하는 나는 날마다 ‘사전 원고’를 조금씩 만져야 한다. 몸이 힘들더라도 몸에 바싹 다시 기운을 붙여서 이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힘든 몸으로 이렇게 얼마쯤 ‘사전 원고’를 쓰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맑게 깬다. 유리병에 미리 받은 샘물을 마신다. 글 한 꼭지를 마저 쓰고, 나도 이제 아이들 사이에 파묻혀서 신나게 단잠을 누려야겠다. 4347.9.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