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깃들고 싶은 사람은



  숲에 깃들고 싶은 사람은 늘 숲을 생각한다. 언제 어디에서나 숲을 꿈꾼다. 그래서 그예 숲으로 나아가고, 숲에서 삶을 지으며, 숲에서 노래를 한다.


  숲에 깃들 마음이 없는 사람은 언제라도 숲을 안 생각한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숲을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헤아리지 못한다. 누군가 숲을 망가뜨려도 아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숲을 밀고 고속도로나 발전소나 공장이나 골프장이 들어서더라도 알아채지 못한다.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돈을 번다. 돈을 생각하고 돈을 바라며 돈을 바라본다. 이리하여,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돈에 둘러싸인다. 돈에 둘러싸이니 언제 어디에서나 돈하고만 얽히고, 돈에 사로잡히다가, 끝끝내 돈에 갇힌다.


  생각이 삶을 짓는다. 생각이 삶으로 드러난다. 생각이 삶으로 피어난다. 생각하는 만큼 살아간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다. 이는 바로 참말이다. 참으로 그렇다. 생각하지 않으니 할 수 없다. 생각하니 할 수 있다. 생각하지 못하기에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느끼거나 바라볼 수조차 없다. 숲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시골로 나들이를 가더라도 어디에 숲이 있는지 모르고, 숲 어귀에 서더라도 이곳이 숲인지 못 깨닫는다. 이를테면, 이런 일도 있다. 스스로 어떤 책을 바라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또 스스로 책방이 어떤 곳인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이녁 손에 쥔 쪽글에 이녁이 사려고 하는 책을 적었으나, 막상 이녘 눈높이에 있는 책꽂이에 이녁이 바라는 책이 꽂혔어도 알아내지 못한다. 생각이 없고 생각을 심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생각을 지어야 한다. 어떤 사랑을 꽃피우면서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지 생각을 지어야 한다.


  남이 시키는 대로 하면 생각을 잃는다. 사회라는 굴레에 갇힌 채 종살이를 하는 쳇바퀴에서 스스로 벗어날 생각을 품지 않으면, 늘 언제 어디에서나 고단한 나날을 되풀이할 뿐, 어떤 삶도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날마다 ‘삶’이 아닌 ‘지겨운 반복작업 컨베이어벨트’에 갇힌 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삶’을 새롭게 누리면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는 숨결이 될 수 있다. 4347.9.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