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푸른 책읽기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고등학교 2학년 푸름이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덧 내 나이가 마흔 줄로 접어들었으니, 나보다 스물 몇 살 어린 넋이다. 이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다. 이 아이는 스스로 생각을 살찌우거나 키우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교사나 다른 동무는 책을 거의 읽지 않을 뿐 아니라 교과서와 참고서 아닌 여느 책은 읽지 못하도록 가로막기까지 한다면서, 입시지옥인 오늘 이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북돋우도록 이끌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나는 이 푸르면서 예쁜 넋을 만나면서 내 고등학교 2학년 적을 돌아본다. 나도 고등학교 2학년 때에 헌책방에 눈을 떴다. 헌책방이라는 곳은 아주 홀가분하고 활짝 열린 책터이다. 헌책방에서 내 가슴에 비춘 빛줄기는 내 숨통을 틔워 주었고, 학교에서는 깊이 생각을 열어 이야기를 나눌 동무가 없었지만, 나보다 앞서 태어나 살다가 아름다운 책 하나 펴낸 수많은 이웃님들을 만나면서, 마음과 마음으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 고등학교 2학년 무렵, 내가 바란 한 가지란 무엇이었을까? ‘대학 갈 공부 해야지’가 아닌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묻고 알려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 나눌 수 있는 길동무였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만난 푸른 넋과 나는 서로 길동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스물 몇 해 앞서 느낀 아쉬움을 이 아이와 함께 즐거운 웃음이나 노래로 되살릴 수 있을까.
열여덟 살 푸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은 어느덧 열여덟 살로 돌아간다. 아름다운 낯으로 사랑스레 웃는 이웃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내 숨결과 넋은 시나브로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으로 새롭게 거듭난다.
내 동무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들한테 이웃이 되거나 삶지기가 되는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는 서로 어떤 눈빛이요 마음밭이면서 사랑노래일까. 4347.9.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