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꽃순이는 꽃을 꺾이 앞서 늘 꽃한테 묻는다. “꽃아, 너 꺾어도 되니?” 그런데, 우리 집 꽃순이는 묻자마자 바로 꺾는다. 꽃이 미처 대꾸하기 앞서 꺾는다. 꽃이 대꾸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줄 아직 모른다. 아직 묻고 기다릴 줄 아는 나이가 아니라 할 수 있을 텐데, 예부터 우리 겨레는 무엇을 하든 늘 먼저 묻고 조용히 기다렸다. 나무를 벨 적에 나무한테 물었다. 풀을 베면서 풀한테 이야기했다. 버섯을 따며 버섯한테 이야기했고, 고기를 낚으면서 고기와 바다한테 이야기했다. 눈에 보이는 이웃한테 이야기하고, 눈에 안 보이는 이웃한테 이야기한다. 우리 삶을 이루는 모두한테 즐거우면서 고맙고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밥 한 그릇을 먹을 적에도 매무새가 남다르다. 그런데 물질문명 사회로 접어든 오늘날에는 무엇 하나 묻는 사람이 드물다. 제대로 묻고 찬찬히 기다리면서 마음을 주고받으려 하는 사람이 몹시 드물다. 왜 못 물을까? 왜 못 기다릴까? 왜 마음을 못 나눌까? 그림책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는 늑대를 빌어 삶을 이야기한다. 늑대 자리에 내 모습을 넣어 보자. 우리는 저마다 얼마나 즐겁거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게 내 삶을 누리는가?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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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 마음 약한 늑대 이야기
조프루아 드 페나르 글.그림, 이정주 옮김 / 베틀북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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