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이 제주섬에 들이닥쳐서 죽인 사람은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일구며 살던 사람들이다. 군인들은 또 누구인가? 저마다 다른 고을에서 흙을 일구며 살던 시골내기이다. 시골내기 젊은 사내가 군대로 끌려가서 총을 손에 쥐면, 참으로 얄궂게도 살인기계가 된다. 바로 제 이웃이자 동무이자 어버이인 시골내기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며, 불에 태워 죽인다. 말도 안 된다 싶은 이야기로 여길는지 모르나, 가까이는 1980년 전라도 광주에서 이런 일이 터졌고, 1950년 이 나라 모든 곳에서 이런 일이 터졌으며, 1947∼49년에 제주섬에서 이런 일이 터졌다. 그러나, 이때 이곳에서만 이런 일이 터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그야말로 온갖 곳에서 이런 일이 터졌고,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한국전쟁이 터지기 앞서까지 또 온갖 곳에서 이런 일이 터졌다. 누가 누구를 죽이는가? 누가 누구를 죽여야 하는가? 죽일 놈이 있다면 대통령이나 정치꾼이 아닌가? 죽일 놈이 있다면 간에 붙다가 쓸개에 붙던 지식인이 아닌가? 그러나 정치꾼도 지식인도 불쌍하다. 스스로 흙을 만질 줄 모르기에 여기저기 달라붙으면서 밥그릇 챙기기만 한다. 불쌍한 아이한테 떡 하나 준다고 하듯이, 불쌍한 정치꾼과 지식인한테 따순 밥 한 그릇을 내밀어야겠지. 만화책 《홍이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만화책으로 그린 이야기는 ‘그냥 만화’로 여길 수 있고, ‘그냥 삶’으로 여길 수 있다. 누가 ‘폭도’인가? 폭도는 없었다. 수수하고 투박한 시골내기가 있었을 뿐이다. 있었다면, 무시무시한 사냥개로 탈바꿈하여 미친 듯이 살인을 저지르는 기계처럼 종살이 노릇을 하던 ‘폭군’이 있었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99/coversum/8990781728_1.jpg) | 홍이 이야기
박건웅 글.그림, 이승민 원작 / 새만화책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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