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9.12.
: 뱀이 살아갈 곳
- 자전거 바람주머니를 장만하려고 읍내에 갔더니, 읍내에는 없단다. 읍내 자전거집에 바람주머니를 갖다 놓지 않으셨단다. 순천으로 나가든지 인터넷으로 사야 한다. 수레와 샛자전거를 끄는 내 자전거는 앞뒤 겉바퀴를 모두 갈아야 하고, 앞바퀴는 바람주머니도 갈아야 한다. 바퀴를 손질하지 않으면 아이들과 자전거마실을 다닐 수 없다.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두 통 부치려 하는데, 아이들을 데려가지 못한다. 아쉬워도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 천천히 자전거를 달린다. 동호덕마을 앞을 지나려는데 길바닥에 널린 주검을 하나 본다. 뱀이다. 자동차에 치이고 밟혀서 죽었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쌀쌀하니, 뱀은 틀림없이 아스팔트 따스한 기운을 받으려고 나왔으리라. 따순 기운을 받으면서 몸을 추스르다가 그만 밟혔으리라.
- 뱀 주검을 지나칠 수 없다. 새 주검도, 벌레 주검도, 개구리 주검도, 모두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풀숲으로 주검을 옮긴다. 부디 아름다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서 즐겁게 삶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에는 사람 손길 안 닿는 깊은 숲에서 태어나 조용히 삶을 누리렴.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