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44. 누구나 한 걸음씩



  사진을 찍을 적에는 누구나 한 걸음씩 걷습니다. 어떤 이는 한꺼번에 열 걸음이나 백 걸음쯤 걷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테지만, 그 사람들도 언제나 한 걸음씩 걸을 뿐입니다. 더 빨리 걷는 사람이나 더 많이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한 걸음씩 걷습니다.


  잘 걷다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참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예 눌러앉는 사람이 있습니다. 깡충깡충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지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마다 삶이 다르고 넋이 다르기에 걸음새가 달라요. 누군가는 한 걸음씩 내딛는 삶을 지겨워 하거나 따분하게 여깁니다. 누군가는 한 걸음씩 내딛으며 빙그레 웃거나 활짝 웃습니다.


  한 걸음씩 모여 천 리를 걷거나 만 리를 걷습니다. 한꺼번에 천 리 걸음이나 만 리 걸음을 내딛지 않아요. 꾸준하게 걸어서 천 리 걸음이나 만 리 걸음이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 걸음걸이를 스스로 느끼는 사람은 늘 새롭습니다. 내 걸음걸이를 스스로 살피는 사람은 언제나 새삼스럽게 삶을 누립니다.


  어느 날 문득 아주 놀랍다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그러면, 놀랍다 싶은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처음일까요? 끝일까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디디는 걸음 가운데 그저 하나일 뿐입니다. 이곳에서 저곳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만날 수 있는 수많은 빛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참으로 빼어나다 싶은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어요. 그렇지요. 그러면 생각해 보셔요. 참으로 빼어나다 싶은 사진은 무엇입니까? 이런 사진 한 장을 얻고 싶어서 사진을 찍습니까? 이런 사진 한 장을 얻었으니, 이제 사진을 더는 안 찍어도 됩니까?


  세계 사진 역사를 밝히는 수많은 사진가들은 참으로 놀랍다 싶은 사진을 찍어서 나누어 줍니다. 어떤 이는 참으로 놀랍다 싶은 사진이 ‘처음이자 끝’입니다. 어떤 이는 참으로 놀랍다 싶은 사진이 ‘날마다 걷는 걸음걸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진을 어떻게 찍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멋진 한 장’을 찍으면 더 안 찍어도 될 사진일까요? 멋진 노래 한 가락을 지었으면 더 노래를 안 불러도 될까요? 멋진 글을 한 꼭지 썼으면 더 글을 안 써도 될까요? 맛난 밥을 한 끼니 지었으면 이제 더 밥을 안 짓고 안 먹어도 될까요?


  가슴이 찡하도록 떨리는 사진 한 장을 얻었다면, 이 사진은 내 기나긴 사진길 가운데 ‘오늘 하루’를 밝히는 즐거운 열매입니다. 오늘 하루 열매를 먹었으니 이튿날에도 열매를 먹을 수 있기를 빌어요. 모레와 글피에도 새로운 열매를 먹고 활짝 웃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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