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책을 읽을 때
오늘날 한국에서 여느 살림집 여느 아줌마가 책을 손에 쥘 겨를은 거의 없다고 할 만하다. 오늘날 한국은 아직 민주와 평등하고 많이 동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가위에 오늘날 여느 아줌마는 무엇을 할까? 설날에 오늘날 여느 아줌마는 어디로 갈까?
아침에 밥과 국을 끓이면서 책을 살짝 쥔다. 그야말로 살짝 쥔다. 밥물을 안치고 국에 불을 넣은 뒤 다른 찬거리를 마련하는 틈이 살짝 비는데, 이때에 한두 쪽을 읽을 수 있다. 찬거리를 모두 마련한 뒤 손을 새로 씻어서 행주로 밥상을 닦고 수저를 놓는 동안 두 손은 물기가 마른다. 밥과 국이 얼마나 익었는가 살피고 나면, 이때에 서너 쪽을 읽을 수 있다.
넷이 먹을 밥 한 끼니 마련하는 동안 으레 열 쪽 남짓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다섯이나 여섯이 먹을 밥 한 끼니라면, 일곱이나 여덟이 먹을 밥 한 끼니라면, 다문 한 쪽조차 읽지 못한다. 아니, 책을 거들떠볼 겨를조차 없다. 넷이 먹을 밥을 마련하더라도, 며칠 동안 비가 그치지 않다가 갠 아침이라면, 밥과 국에 불을 올리고 나서 바지런히 손빨래를 할 틈이 생긴다. 이런 날에도 손에 책을 쥘 틈이 없다.
밥을 모두 먹이고 설거지를 마친 뒤 부엌 비질을 끝내면 살짝 기지개를 켠다. 이때에 하품을 하면서 손에 책을 쥘 만하다. 그러나 몸이 고단하지 않을 때라야 손에 책을 쥔다. 때로는 고단함을 털어내자 생각하면서 책을 손에 쥐어 보는데, 스르르 눈이 감기기 일쑤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여느 살림집 여느 아저씨는 무엇을 할까? 오늘날 한국에서 여느 살림집 여느 아저씨는 어떤 책을 읽으면서 어떤 지식을 쌓고 어떤 일을 할까? 식은밥이 있으면 10분, 새로 밥을 지어야 하면 30분, 꼭 이만 한 겨를에 네 식구 먹을 밥 한 끼니 차릴 줄 모르는 사내라면 사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4347.9.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