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립고 힘들어 손빨래



  졸립고 힘들다. 며칠 앞서 서울마실을 한 탓에 몸이 고단하다고 볼 수 있다. 좀 드러눕고 싶지만, 조금 더 견디자는 마음으로 찬물로 씻고 빨래를 하자고 생각한다. 씻는다. 번쩍 깨지는 않지만 한결 낫다. 알몸으로 손빨래를 한다. 졸립고 힘든 몸인 탓에 즐겁게 손빨래를 하면서도 어깨가 뻑적지근하다.


  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입에는 물을 한 모금 머금는다. 빨래를 하는 동안 입으로는 물 한 모금 머금으면서 마음으로는 노래를 부른다. 물 흐르는 소리도 복복거리는 소리도 아닌, 내 마음에서 흐르는 노래를 듣는다.


  빨래를 마치고 물을 짜는데 택배가 온다. 부엌에서 만화책을 보던 큰아이가 얼른 마루문을 열고 택배를 받아 준다. “벼리야, 고맙다고 인사를 하렴.” 일곱 살 큰아이가 택배 상자를 받은 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한다.


  옷걸이를 챙겨 마당으로 내려선다. 하나하나 넌다. 햇볕이 따갑다. 여름 내내 비가 쏟아지고 우중충한 하늘이더니 한가위를 앞두고 하늘빛이 파랗다. 그래, 곡식이 여물 이즈음에라도 해가 나니 고맙다. 한가위 언저리에 이렇게 하늘빛이 파라니, 올해에는 아주 동그랗고 아주 밝은 달을 볼 수 있겠네. 마을 어른들이 농약을 안 쓴다면 밤에 달빛뿐 아니라 개똥벌레 불춤도 볼 테지만, 달이라도 밝게 보면 반갑다. 기지개를 켠다. 새롭게 기운을 내자. 4347.9.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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