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삯으로 받는 책



  어느 곳에 글을 하나 보냈더니, 글삯이라면서 그림책을 여러 권 보내 주었다. 토요일 낮에 택배 상자가 하나 와서 열어 보니 깜짝선물이라고 할 만한 그림책이 나온다. 지난 달포 사이 살림돈이 없어 새롭게 그림책을 하나도 장만하지 않았다. 마침 이럴 즈음 새로 나온 그림책 여러 권을 받으니 누구보다 큰아이가 기뻐하면서 반긴다. 상자에서 나온 새로운 그림책을 잽싸게 골라서 바로 마룻바닥에 펼치더니 종알종알 읽는다. 작은아이도 누나 곁에서 그림책을 하나 펼쳐서 그림을 훑는다.


  글삯을 돈으로 받으면 이 돈으로 책을 장만했겠지. 이때에는 내가 스스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장만한다. 글삯으로 처음부터 책으로 준다면 어떤 책을 받을는지 모른다.


  재미있다. 내가 고르지 않을 법한 책을 받을 수 있고, 내가 미처 모른 예쁜 책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어떤 그림책을 장만하든, 책에 적힌 글을 한참 손질해야 한다. 예나 이제나 그림책을 한국말로 쓰거나 옮기는 어른들은 아직 ‘어린이가 눈으로 읽고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새길 한국말’이 어떠한지 제대로 모른다. 한 권은 다 손질을 하고 두 권째 손질을 하다가 하품이 나온다. 저녁이 늦기도 해서 이튿날 마저 손질하기로 한다. 불을 끄고 아이들을 재운다.


  아이들이 많이 어릴 적에는 내가 ‘그때그때 눈으로 고쳐서 읽어 주’면 되었지만, 이제 큰아이가 스스로 글을 읽을 수 있으니, ‘그때그때 그림책에 손으로 글을 고쳐’ 놓아야 한다. 다른 어른들이 잘못 쓴 글을 바로잡는다. 아무쪼록 낮과 저녁을 새로운 책으로 넉넉하게 누린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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