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8.29.

 : 항공방제와 제비



- 우체국에 가려고 자전거를 꺼낸다. 오늘도 작은아이가 먼저 알아본다. 아마 작은아이는 아버지가 움직이는 모습을 하루 내내 곰곰이 지켜보았나 보다. 작은아이는 아버지가 마당에 내려서기만 하면 곧장 뒤를 따른다. 자전거를 덮은 두꺼운 천을 벗기면 “누나야! 아버지 어디 간대! 우리 가자!” 하고 소리부터 지른다.


- 두 아이가 움직이는 결을 잘 아니까, 일찌감치 자전거 덮개부터 걷는다. 이렇게 하고 나서 길을 나설 짐을 꾸린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대문 밖으로 빼내기까지 집안에서 이십 분 남짓 보낸다. 이동안 두 아이가 마당에서 놀도록 하려는 뜻이라고 할까.


- 작은아이는 대문 앞 수챗구멍을 들여다보면서 “누나야, 저기 달팽이 있어!” 하고 부른다. 그런데 달팽이가 아니란다. 우렁이란다. 네 살 작은아이는 아직 달팽이와 우렁이를 가릴 줄 모른다.


- 천천히 자전거를 달린다. 조용한 들에 윙윙 소리가 자꾸 들린다. 그러려니 하면서 바람을 가르는데, 문득 저 앞에서 헬리콥터 하나를 본다. 아, 항공방제 헬리콥터 소리였구나. 끔찍하군.


- 여러 날 저 항공방제 헬리콥터가 온 마을 들판을 헤집으면서 농약을 뿌려대니, 이 늦여름과 이른가을 사이에 풀벌레 노랫소리가 감쪽같이 사라졌구나. 우리 집에 요새 직박구리도 박새도 콩새도 제비도 참새도 안 찾아오더니, 이 모든 까닭이 저 항공방제 헬리콥터 때문이었구나.


-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가는 길을 멀리 에돈다. 그러나, 한숨을 쉬지 않는다. 농약을 뿌려야 한다고 믿는 시골 할매와 할배한테 한숨을 쉴 수 없다. 그렇게 길드셨기 때문이다.


- 작은아이는 우체국에 닿을 무렵 잠든다. 수레에서 달게 잔다. 우체국에서 편지 열일곱 통을 부친다. 가게에 들러 달걀 한 꾸러미를 장만한다. 아직도 항공방제 헬리콥터가 농약을 뿌린다. 더 멀리 에돌아 집으로 돌아가는데 눈이 따끔거린다. 꽤 멀리 떨어졌지만, 바람이 거의 안 부는 날이지만, 농약이 날아드는구나. 이런 농약바람에서 벗어나려고 다른 데로 가 보았자, 한국에서 다른 데는 자동차 때문에 시끄럽고 코가 냅다. 참으로 그악스럽다.


- 농약이 드세게 춤추는 들판 끝자락에 제비가 마흔 마리쯤 무리지어 춤춘다. 아, 오늘이 그날이로구나. 둘레에서 다른 제비가 한 마리씩 무리로 섞인다. 그래, 그렇구나.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에서 살던 제비가 오늘 크게 무리를 지어 모여서 밤이나 이튿날 새벽에 태평양을 건너려 하는구나. 그런데 어쩌다 날받이를 이렇게 해서 농약바람을 잔뜩 먹어야 하니. 참 애틋하구나. 너희가 올봄에 마을로 돌아왔을 적에는 이 무리보다 숫자가 훨씬 많았는데, 새끼를 너덧 마리씩 낳아서 길렀을 테지만, 너희 숫자는 거의 안 들어났구나. 외려 줄은 듯하구나. 이런 한국 시골에 너희들이 이듬해 봄에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너희가 이듬해 봄에 다시 한국 시골에 찾아오면, 이 시골에서 너희를 반길 사람이 있을까.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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