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 13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63



보고 지어서 함께하는 사랑

― 동물의 왕국 13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5.25.



  2010년부터 지네와 한집에서 삽니다. 비가 자주 내려 축축한 날이면 으레 지네가 나타납니다. 보일러를 돌려 집안을 덥히면 지네는 스스로 밖으로 나갑니다. 되게 커다란 지네가 나오는 날이 있고, 조그마한 지네가 나오는 날이 있습니다. 이럭저럭 지네와 살았구나 싶은데, 엊저녁 지네가 처음으로 내 오른발을 타고 올라와서 발끝을 깨뭅니다. 처음에는 살짝 따끔하다 싶어 모기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발가락이 살짝 간지럽습니다. 뭔가 하고 발을 드니 지네입니다. 어라, 이 아이가 왜 내 발가락을 감고 올라왔을까. 발을 툭툭 털어 지네를 떨굽니다. 지네는 볼볼 기어 어디론가 숨습니다.


  지네는 내 발가락을 왜 물었을까요. 지네는 내 발가락을 문 뒤 어디로 갔을까요. 지네한테는 우리 집이 어떤 터전일까요. 이곳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기 앞서부터 지네가 살았을까요. 지네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목숨들이 이곳을 저희 삶터로 삼아서 살아왔을까요.



- “그곳의 자료로 인간의 역사를 봤다! 인간이 얼마나 전쟁을 되풀이했는지! 그때마다 얼마나 비약적인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루었는지! 역시 내 생각이 옳았다. 동물은 서로를 죽임으로써, 가장 머리를 쓰고, 가장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리고 그 동물 중에서, 인간이 가장 최악이다.” (26∼27쪽)

- “너 같은 게 있어서, 이 세상의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거야! 글로뷸! 저런 천박한 자가 가진 천박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천박한 무기에 질 네가 아니다! 천박한 저 녀석의 생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지옥뿐!” (33쪽)




  모기는 사람한테 내려앉아 피를 빱니다. 모기는 피를 빨아서 이녁 목숨을 잇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모기를 보면 잡아서 죽입니다. 요즈음은 약을 뿌려서 죽입니다. 왜 모기는 사람 피를 빨아먹으려 하고, 왜 사람은 모기를 보면 몽땅 죽이려고 할까요. 파리가 지구별에서 사라지면 지구별은 쓰레기로 넘쳐서 망가질 테니 파리는 지구별에 알맞게 있어야 할 텐데, 모기는 지구별에서 먹이사슬을 어떻게 지키는 구실을 할까요. 모기가 모두 사라지면 지구별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모기 소리를 들었다고 하면서 잠에서 깨면, 나도 잠에서 깨어 모기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아이들은 모기를 잡을 때까지 다시 잠들지 못합니다. 나는 모기가 물거나 말거나 그냥 자곤 하지만, 모기가 문다 싶어도 모기가 물 만한 자리를 손으로 슥슥 비비면서 잡습니다. 내 피를 조금 내주고 잡으면 된다고 여깁니다. 나와 달리 아이들은 모기 소리가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어버이로서 내가 밤에 할 일은 아무튼 모기를 때려잡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적에는 오줌기저귀를 가느라 밤잠을 못 이루었고, 오줌기저귀를 뗀다 싶으니 밤오줌을 누이느라 밤잠을 못 이루더니, 밤오줌을 이럭저럭 잘 가린다 싶은 요즈막에는 밤에 틈틈이 모기를 잡습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더 크면 밤에 어떤 일을 맞이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모기란 참말 무엇일까 하고 생각을 기울입니다.



- “글로뷸의 데이터 수집 완료. 또한 녀석의 전멸 패턴을 완성했다.” (74쪽)

- “어떤 종교든 이 천국에는 ‘죽은 후에만’ 갈 수 있지. 이게 네게 내는 문제야. 종교는 살아 있는 사람을 구원하는 가르침인데, 어째서 죽은 후에만 갈 수 있는 곳에, 천국을 만들었을까?” (84∼85쪽)





  물을 마시면 물은 내 몸이 됩니다. 골짝물을 마시면 골짝물은 내 몸이 됩니다. 냇물을 마시면 냇물은 내 몸이 됩니다. 수돗물을 마시면 수돗물은 내 몸이 됩니다. 소주를 마시면 소주는 내 몸이 됩니다. 막걸리를 마시면 막걸리는 내 몸이 됩니다. 찻물을 마시면 찻물은 내 몸이 되지요.


  자동차가 끝없이 오가는 도시에서 숨을 쉬면, 자동차 배기가스는 내 코를 거쳐 몸으로 들어와 내 숨결이 됩니다. 핵발전소 둘레에서 살며 숨을 쉬면, 방사능이 내 코뿐 아니라 살갗을 거쳐 몸으로 들어와 내 숨결이 됩니다. 광산에서 탄을 캐는 일을 하면, 탄가루가 코와 살갗으로 스며들어 내 숨결이 될 테고, 시골 밭자락에서 일을 하면, 흙내음과 풀내음이 코와 살갗으로 스며들어 내 숨결이 될 테지요. 그런데, 시골에서 농약을 뿌리거나 비료를 치면, 농약과 비료가 내 코와 살갗으로 들어와서 내 숨결이 됩니다.


  아픈 사람은 몸을 아프게 할 만한 것을 꾸준히 몸에 넣었기 때문입니다. 몸을 아프게 할 만한 것을 꾸준히 몸에 넣은 다음, 이를 털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 아픈 사람은 몸을 아프게 할 만한 것을 몸에 안 넣습니다. 몸을 아프게 할 만한 것이 몸에 들어왔어도 다시금 몸 바깥으로 내보내면 됩니다.


  누구나 이녁 삶을 스스로 짓는데, 누구나 이녁 몸과 마음 또한 스스로 짓습니다. 아름답거나 튼튼한 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아름답거나 튼튼한 몸이 되도록 짓습니다. 아름다움이나 튼튼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몸이 어떻게 되든 생각을 쏟지 못합니다.



- “넌 자각하지 못했겠지만, 신은 네게 ‘생명을 주는 힘’을 맡겼다. ‘샐러드 우동’, ‘루크’. 네가 만든 키메라는 자아와 진짜 생명을 가졌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키메라를 연구하고, 생명을 연구해도 이룰 수 없었던 위업을 넌 이루어낸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지? 모든 생명을 죽이려 했던 네게, 신은 ‘생명을 주는 힘’을 맡기다니.” (93쪽)

- “일레인! 이 별을 파괴해선 안 돼! 이 별은 사랑스러운 생명으로 넘쳐나고 있어!” (150쪽)

- “일레인, 생명을 알아 줘! 빼앗기 전에 그 생명의 아름다움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159∼160쪽)





  라이쿠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4) 열셋째 권을 읽습니다. 이제 이 만화는 곧 끝이 납니다. 열넷째 권이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권을 앞둔 열셋째 권에서는 ‘사람이 스스로 다른 목숨을 빚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나와 너 사이에서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도록 하는 삶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왜 새로운 목숨을 너와 나 사이에서 빚으려 할까요? 내가 그러모은 돈을 물려주려고? 내가 지은 집을 물려주려고? 내가 쌓은 이름을 물려주려고? 우리는 왜 너와 나 사이에 새로운 목숨을 빚을까요?


  언제나 오직 하나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누린 삶을 사랑하기에 새로운 목숨을 빚습니다. 너와 내가 아름답게 하루하루 누리면서 가꾸었기에 사랑으로 새 목숨을 빚고 싶습니다.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 새로운 손길로 이 땅을 한결 아름답고 튼튼하게 돌보면서 가꾸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목숨이 자라면서 새로운 눈길로 이 땅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 “주어지지 않았다면, 만들면 돼.” (111쪽)

- “쿠오우의 울음소리를 들어! 사랑해. 일레인.” (132∼133쪽)

- “그렇다면 마음대로 파괴해. 직성이 풀릴 때까지 부수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넌 정말로, 태어난 의미를 잃게 될 거야.” (162쪽)

- “그건, 네 몸이 엄마보다도 깊은 사랑에 의해 태어났기 때문이야. 그런 네 몸이, 쿠오우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이게 온기라는 거야.” (180∼181쪽)




  지구별에 평화가 깃들려면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스스로 어떤 삶을 날마다 새롭게 지어서 아름답게 하루를 즐기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지구별에 평등과 민주와 자유가 넘실거리려면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생각해야 합니다. 스스로 어떤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지어서 사랑스레 하루를 누리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이 삶을 이루고, 생각이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생각이 있을 때에 삶과 사랑이 있습니다. 생각이 없이 이끌리기만 한다면 삶도 사랑도 없습니다. 쳇바퀴를 돌거나 수렁에 갇히거나 기계 부속품이 된다든지 노예처럼 부려먹힐 때에는 삶과 사랑이 없을 뿐 아니라 생각조차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은 아이들한테서 생각을 빼앗습니다. 입시지옥은 아이들이 생각을 못하게끔 가로막습니다. 입시지옥이 끝난 뒤에는 취업이라는 그물이 있어, 다시금 생각을 가로막습니다. 돈을 벌지 않으면 굶어서 죽는다는 잘못된 지식을 사람들한테 심으니, 사람들은 이러한 굴레에 사로잡혀 그만 생각을 잊습니다. 돈을 버는 쳇바퀴로만 나아가고 말아, 스스로 지을 아름다운 삶과 사랑을 잃습니다.


  살아갈 뜻을 스스로 찾을 때에 살아갑니다. 살아갈 뜻을 스스로 찾지 못하다면 노예이거나 기계 부속품일 뿐입니다. 4347.8.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