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60] 미리끊기



  ‘미리끊기’라는 말은 내가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안 짓지도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미리끊다’라는 말을 아주 익숙하게 들었습니다. 먼저, 버스표를 미리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다음으로 기차표를 미리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다음으로 극장표를 미리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큰 놀이공원이라든지, 어디에 들어가는 표도 미리 끊어야 한다는 말을 익히 들었습니다. 다만, 둘레 어른들이 “미리 끊어야겠어” 하고 말하면서도 좀처럼 ‘미리끊기’ 같은 낱말은 지어서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딱히 한국말을 아주 사랑하는 티를 내려는 뜻이 아니고,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다들 표를 미리 끊는다고 말하니까, 내 입에서 저절로’ “미리끊기 했니?”나 “미리끊기 하셨어요?”와 같은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둘레에서 다 잘 알아들었어요. “그래, 미리끊기를 해 두었지” 하는 대꾸를 들었습니다. 때와 곳에 따라서는 ‘미리끊기’뿐 아니라 ‘먼저끊기’를 할 수 있고, ‘나중끊기’를 할 수 있습니다. ‘먼저끊기’란 남보다 먼저 표를 끊을 수 있다는 뜻이요, ‘나중끊기’는 결재는 나중에 하되 자리만 먼저 잡는다는 뜻입니다. ‘미리끊기’는 어떤 날을 앞두고 일찌감치 표를 끊는다는 뜻입니다. 굳이 ‘선불예약’이나 ‘후불예약’처럼 어렵게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4347.8.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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