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 내려앉은 풀잎



  비가 오는 날은 온통 물바다가 된다. 마당도 풀밭도 꽃밭도 고샅도 온통 물바다이다. 빗물은 모든 곳을 촉촉하게 적신다. 비가 잦거나 길면 축축한 기운이 퍼진다. 비가 잦아들 무렵 마당에 내려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돌담에 돋은 풀을 문득 바라본다. 빗방울은 조그마한 풀잎에도 조그마한 물방울이 되어 내려앉는다. 조그마한 풀잎은 한여름을 지나면서 짙푸른 빛깔뿐 아니라 누렇거나 옅붉은 빛으로 바뀌기도 한다.


  시골에서 살기에 언제나 풀을 마주할는지 모르지만, 시골이라 하더라도 언제 어디에서나 풀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마을 이웃이 풀을 어떻게 헤아리느냐에 따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보이는 족족 뜯거나 뽑아야 마음이 풀리는 이웃이 있고, 풀이란 풀에는 죄 농약을 뿌려야 한다고 여기는 이웃이 있다. 오늘날에는 시골보다는 차라리 도시에서 풀을 보기가 더 수월할 수 있다. 도시사람은 길가에 풀이 돋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을 뿐 아니라 쳐다보지 않으니, 뽑는다거나 농약을 뿌린다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어릴 적에 빗방울놀이를 곧잘 했다. 비만 오면 풀잎에 빗방울이 내려앉기 마련이고, 비만 오면 풀잎 앞에 쪼그려앉아서 손가락으로 톡톡 퉁기며 놀았다. 하염없이 빗방울을 바라보곤 했다. 빗방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빗방울이 어떻게 풀잎에 톡 붙어서 안 떨어지나 궁금하게 여겼고, 빗방울이 또르르 구르는 모습을 쳐다보면서 깔깔대며 웃었다. 두 아이와 살아가는 어른이 되어도 빗방울이 내려앉은 풀잎을 느끼면, 지나치지 못하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4347.8.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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