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예부터 어느 나라에서든 ‘사전 만들기’를 하는 사람은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걸상에 앉아서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한 나라에서 쓰는 말을 책 하나로 담아내는 일을 하자면 기나긴 해를 들여도 뜻을 이루지 못해 두고두고 이 일을 물려주기까지 한다.


  ‘사전 만들기’는 빨리 끝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제대로 끝내야 하는 일이다. 빨리 끝내는 데에만 매달린 《표준 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엮음)이 얼마나 허술하게 태어났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린이가 많이 보는 《보리 국어사전》(보리출판사 엮음)도 빨리 끝내는 데에 더 마음을 기울인 탓에 ‘교과서 학습용어 풀이’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말을 가꾸면서 삶을 가꾸는 밑거름이 되도록 돕는 사전이다. 말을 가꾸면서 넋을 가꾸는 빛을 깨닫도록 이끄는 사전이다. 사전 하나는 어쩌다 한 번 들추면서 ‘뜻 모르는 낱말’을 알아보는 책이 아니다. 사전 하나는 낱말 하나를 바탕으로 삶과 넋이 어떻게 얼크러지면서 아름답게 빛나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꾸러미이다.


  한국에서 태어날 한국말사전이 아름답게 빛날 수 있기를 꿈꾼다. 나는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걸상에 앉는다. 그런데, 나는 두 아이를 건사하면서 곁님을 돌보는 몫을 맡는다. 걸상에만 붙을 수 없다. 바지런히 일어나서 밥을 끓이고 비질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다녀야 한다. ‘사전 만들기’라는 일을 하면서 시골에서 아이들과 복닥이는 삶이란 참 재미나구나 싶다. 나는 언제나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아버지 엉덩이가 닳지 말라며 마음을 써 준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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