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483) 축재


청렴결백, 민주주의, 솔선수범 따위의 구호를 외치면서 뒤에서는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고 더러운 축재를 일삼았던 자들의 실체이다

《리영희-스핑크스의 코》(까치,1998) 293쪽


 더러운 축재를 일삼았던

→ 더러운 돈을 모았던

→ 더럽게 돈을 모았던

→ 더럽게 떼돈을 벌었던

→ 더럽게 검은돈을 쌓았던

 …



  흔히 “부정 축재” 꼴로 쓰는 한자말 ‘蓄財’입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니 소리값이 같은 다른 한자말은 없습니다. 오로지 “재산을 모음”을 뜻하는 ‘蓄財’만 실립니다. 그러나, “재산을 모음”으로 고쳐쓰라고 나옵니다. 한국사람이 쓸 만하지 않은 낱말인 셈입니다.


 ‘축재’인데 “부정 축재”를 “부정한 재산을 모음”으로 고쳐쓴다고 해서 뜻이나 느낌이 또렷해지지 않습니다. ‘부정(不淨)한’까지 ‘깨끗하지 못한’이나 ‘더러운’이나 ‘지저분한’으로 고쳐 주어야 뜻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축재’를 알맞춤하게 다듬어서 쓰는 분은 퍽 드뭅니다. 그냥 ‘축재’라고 말해 버립니다. ‘부정’ 또한 알뜰히 걸러내어 쓰는 분도 드뭅니다. 그예 ‘부정’이라고 말하고 맙니다.


 부정 축재 → 검은돈 모음

 축재도 상당했으므로 → 돈도 많이 모았으므로


  생각이 없다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마음이 없다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넋이 없다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느낌이 없다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삶이 없다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있으면 ‘부정’이든 ‘축재’이든 털어내거나 씻어내어야지 싶습니다만, 내 이웃과 동무가 있으면 “부정 축재”든 “축재도 상당했으므로”든 몰아내거나 쫓아내야지 싶습니다만. 4341.11.26.물/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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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결백, 민주주의, 솔선수범 따위를 외치면서 뒤에서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더러운 돈을 모았던 놈들이 발가벗은 모습이다


“따위의 구호(口號)”는 “따위 목소리”로 다듬고, ‘공포(恐怖)’는 ‘두려움’으로 다듬습니다. “자(者)들의 실체(實體)이다”는 “사람들 참모습이다”나 “사람들을 발가벗긴 모습이다”로 손봅니다.



 축재(蓄財) : 재물을 모아 쌓음. ‘재산을 모음’으로 순화

   - 부정 축재 /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축재도 상당했으므로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79) 기분


자전거가 달리기 시작하자 허리가 쑥 펴지면서 키도 갑자기 더 커지고 어깨까지 쩍 벌어지는 기분이었다

《박남정-초딩, 자전거길을 만들다》(소나무,2008) 8쪽


 어깨까지 쩍 벌어지는 기분이었다

→ 어깨까지 쩍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 어깨까지 쩍 벌어지는 듯했다

→ 어깨까지 쩍 벌어지는구나 싶었다

 …



  꼭 털어내야 하는 한자말 ‘氣分’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국말사전에 실린 다른 한자말 ‘기분’ 네 가지는 우리가 쓸 일이 조금도 없다고 느낍니다. ‘氣奔’이란 무엇일까요? ‘가려움증’이나 ‘가려움병’이 아닐는지요. “얼마”를 뜻한다는 한자말 ‘幾分’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키와 삼태기”는 그저 이런 살림살이 그대로 가리키면 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됨됨이”를 ‘機分’이라는 한자말로 가리킨다고도 합니다만, 사람 됨됨이는 ‘됨됨이’라 말하면 될 뿐입니다.


 친구의 냉담한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

→ 친구가 차갑게 굴어 마음이 나빴다

→ 친구가 쌀쌀맞아서 토라졌다

→ 친구가 매몰차서 마음이 안 좋다

 술 한잔 받으시고 기분 푸세요

→ 술 한잔 받으시고 마음 푸셔요

 오랜만에 기분을 내기 위해

→ 오랜만에 즐겁게 놀려고

→ 오랜만에 즐겁게 지내려고

 거리는 온통 연말 기분에 휩싸여 북적거렸다

→ 거리는 온통 새해맞이에 휩싸여 북적거렸다

→ 거리는 온통 새해맞이를 앞두고 북적거렸다


  마음이 어떻게 흐르는지 헤아립니다. 내 마음이 어떤 빛으로 흐르는지 살핍니다. 내 마음이 어떤 무늬가 되어 어떻게 빛나는지 돌아봅니다.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읽고 사랑을 나눌 적에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 한 마디에는 언제나 따사로운 빛이 서립니다. 어떤 빛을 담아서 마음을 밝히려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살리는 길이란, 우리 삶과 넋을 함께 살리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4341.11.6.나무/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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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가 달리자 허리가 쑥 펴지면서 키도 갑자기 더 커지고 어깨까지 쩍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자전거가 달리기 시작(始作)하자”는 “자전거가 달리자”로 다듬습니다. 그런데, 달리는 임자는 자전거가 아닌 사람일 터이니, “자전거를 달리자”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아니면, “자전거를 굴리자”로 적어 줍니다.



 기분(氣分)

  (1) 대상·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 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

   - 기분이 좋다 / 기분이 나쁘다 / 친구의 냉담한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 /

     술 한잔 받으시고 기분 푸세요 / 오랜만에 기분을 내기 위해

  (2)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분위기

   - 거리는 온통 연말 기분에 휩싸여 북적거렸다 / 잔치 기분에 들떴다

 기분(氣奔) : [한의] 온몸의 살갗이 몹시 가렵고 긁으면 피가 나는 피부병

 기분(幾分) = 얼마

 기분(箕?) : 키와 삼태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

 기분(機分)

  (1) 사람의 됨됨이

  (2) 어떤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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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84) 인가


전차 종점에 도착하자 인가가 드문드문 보였고, 나는 물어 물어 재일본조선인연맹을 찾아갔다

《이진희/이규수 옮김-해협, 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삼인,2003) 14쪽


 인가가 드문드문 보였고

→ 집이 드문드문 보였고

→ 살림집이 드문드문 보였고

→ 사람 사는 집이 드문드문 보였고

 …



  어릴 적부터 몹시 궁금하게 여긴, 또는 얄궂게 여긴 낱말 가운데 하나가 ‘인가’입니다. 어린이책을 읽거나 교과서를 읽을 때면 으레 ‘인가’라는 낱말이 튀어나오곤 했는데, “사람 사는 집”이건 “짐승 사는 집”이건, 모두 ‘집’일 뿐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새가 사는 곳을 일컬어 ‘둥지’와 ‘보금자리’라고도 하지만, ‘둥지’와 ‘보금자리’는 “사람이 아늑하게 깃들이는 곳”을 일컬을 때에도 자주 씁니다. 오히려 ‘집과 견주어 아늑한 자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집 . 살림집 . 사람집


  우리한테는 ‘집’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이 한 마디로 넉넉하며, 이 한 마디로 즐겁습니다. 다만, 이 한 마디로 모자라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면 ‘살림집’ 같은 낱말을 써 볼 수 있습니다. ‘집’하고 ‘살림집’, 이 두 가지 낱말을 때와 곳에 맞게 나누어 쓰면 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낱말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모자라다 싶으면 ‘사람집’이라는 낱말까지 써 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낱말로도 모자라다고 느끼면?


  글쎄, 그때에는 스스로 알맞춤하게 새 낱말을 지어내야겠지요. 아니면, ‘둥지’와 ‘보금자리’를 사람 사는 집을 가리킬 때에도 쓰듯, 알맞춤하다고 느껴질 낱말을 따오든지요.


  불교에서 쓰는 ‘印可’라든지 역사사전에 옮겨야 할 ‘印家’는 한국말사전에서 덜어야겠습니다. ‘姻家’와 ‘隣家’이란 참말 무엇일까요? 친척집은 ‘친척집’이고 이웃집은 ‘이웃집’입니다. 인척집을 따로 가리키려 한다면 ‘인척집’이라 하면 됩니다. 4341.12.11.나무/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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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끝역에 이르자 집이 드문드문 보였고, 나는 물어 물어 재일본조선인연맹을 찾아갔다


“종점(終點)에 도착(到着)하자”는 “마지막역에 닿자”나 “끝역에 이르자”로 다듬어 줍니다.



 인가(人家) : 사람이 사는 집

   - 인가가 드물다 / 인가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인가(印可)

  (1) [불교] 사승(師僧)이 제자의 득법(得法) 또는 설법을 증명하고 인가함

  (2) [불교] 대상이 옳음을 소상하게 밝혀 인정함

 인가(印家) : [역사] 관인(官印)을 넣는 집

 인가(姻家) : 인척(姻戚)의 집

 인가(認可)

  (1) = 인허

  (2) [법률] 제삼자의 법률 행위를 보충하여 그 효력을 완성하는 일

 인가(隣家) = 이웃집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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