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910) 비상
리기다소나무는 씨앗을 아주 많이 맺으며 자기 영역을 넓히는 데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소로우/이한중 옮김-씨앗의 희망》(갈라파고스,2004) 25쪽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 남달리 눈길을 둔다
→ 남달리 마음을 쓴다
→ 무척 마음을 쓴다
→ 매우 애쓴다
…
한국말사전에 아홉 가지 ‘비상’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飛上’이나 ‘飛翔’은 ‘날다’와 얽힌 한자말입니다. ‘飛上’은 “높이 날아오름”을 뜻한다 하는데, ‘飛翔’은 ‘날기’로 고쳐쓰라고 합니다. 두 낱말 모두 ‘날다·날아오르다’로 고쳐쓸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비행기가 하늘로 비상하고 있다”는 “비행기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로 바로잡고, “바다 위로 갈매기가 비상을 즐기듯 선회했다”는 “바다 위로 갈매기가 날갯짓을 즐기듯 빙 돌았다”로 바로잡습니다.
‘非想’이나 ‘飛霜’이나 ‘備嘗’이나 ‘悲傷’이나 ‘鼻上’ 같은 한자말은 그예 군더더기입니다. 하루 빨리 이런 덧없는 한자말은 한국말사전에서 털어야겠습니다.
그는 재주가 비상하다
→ 그는 재주가 남다르다
→ 그는 재주가 뛰어나다
비상한 체력과 건강을 지니고 있었다
→ 놀라운 기운과 몸이다
→ 대단한 기운과 몸이다
이 아이의 그림 솜씨는 비상하구나
→ 이 아이는 그림 솜씨가 훌륭하구나
→ 이 아이 그림 솜씨는 뛰어나구나
→ 이 아이는 그림 솜씨가 놀랍구나
생각하고 다시 생각할 때에 말빛이 살아납니다. 살피고 다시 살필 때에 말넋을 살찌웁니다. 어떻게 날아오를까요? 어떻게 하늘을 날면 시원하면서 짜릿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얼마나 뛰어난 슬기와 마음을 빛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얼마나 대단한 사랑과 웃음으로 삶을 노래하는가요? 즐겁게 노래하는 넋으로 말과 글을 즐겁게 가꿀 수 있기를 빕니다. 4338.3.18.쇠/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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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다소나무는 씨앗을 아주 많이 맺으며 제 터를 넓히는 데 남달리 마음을 쓴다
“자기(自己) 영역(領域)”은 “제 터”나 “제 자리”로 손질하고, “관심(關心)을 가지고 있다”는 “마음을 쓴다”나 “눈길을 둔다”로 손질합니다.
비상(非常)
(1) 뜻밖의 긴급한 사태. 또는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신속히 내려지는 명령
- 비상 대책 / 비상이 걸리다
(2) 예사롭지 아니함
(3) 평범하지 아니하고 뛰어남
비상(非想) : 상념을 끊고 삼매에 들어가는 일
비상(砒霜) : 비석(砒石)에 열을 가하여 승화시켜 얻은 결정체
비상(飛上) : 높이 날아오름
- 비행기가 하늘로 비상하고 있다
비상(飛翔) : 공중을 날아다님. ‘날기’로 순화
- 바다 위로 갈매기가 비상을 즐기듯 선회했다
비상(飛霜) : 하늘에서 내리는 서리
비상(備嘗) : 여러 가지 어려움을 두루 맛보아 겪음
비상(悲傷) : 마음이 슬프고 쓰라림
비상(鼻上) : 콧등 위라는 뜻으로, 일이 절정이나 극단에 이른 것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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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906) 사색
그러자 어쩔 줄 몰라 하던 큰 늑대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시튼/장석봉 옮김-위대한 늑대들》(지호,2004) 197쪽
큰 늑대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 큰 늑대 얼굴이 파리해졌다
→ 큰 늑대는 얼굴이 하얘졌다
→ 큰 늑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사람도 늑대도 크게 놀랄 일이 있으면 얼굴이 하얗게 질립니다. 얼굴이 파리해지거나 해쓱해집니다. 얼굴이 하얘지지요. 보기글에서는 ‘死色’이라는 한자말을 쓰는데, ‘죽음빛’은 하얘지는 빛이기도 하면서 새까매지는 빛이기도 합니다. 하얘지는 빛은 ‘하얘지다’나 ‘파리해지다’라 가리키면 되고, 새까매지는 빛이라면 ‘흙빛’이 된다고 하면 됩니다.
네 가지 빛깔을 가리킨다 할 적에는 ‘네빛’이라 하면 됩니다. 애써 ‘四色’이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런데, ‘四塞’ 같은 한자말을 쓸 일이 있을까요. 깊이 생각할 적에는 ‘깊이 생각하다’나 ‘깊은생각’처럼 말하면 됩니다. ‘思索’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색의 계절
→ 생각이 무르익는 철
→ 깊이 생각하는 철
사색에 잠기다
→ 생각에 깊이 잠기다
사색적인 사람
→ 생각이 깊은 사람
→ 생각 깊은 사람
인생과 자연을 해석하고 사색한다
→ 삶과 자연을 헤아리고 돌아본다
→ 삶과 숲을 깊이 살피고 밝힌다
‘辭色’ 같은 한자말은 누가 쓸는지 궁금합니다. 이 한자말은 “말과 얼굴빛”을 함께 가리킨다는데, 이런 한자말을 쓴다 한들 알아들을 사람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그는 감정을 사색에 나타내지 않는다”처럼 쓴다 한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요. “그는 마음을 말에도 얼굴에도 나타내지 않는다”처럼 써야 비로소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4338.3.7.달/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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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어쩔 줄 몰라 하던 큰 늑대는 얼굴이 하얘졌다
“큰 늑대의 얼굴이”는 “큰 늑대 얼굴이”나 “큰 늑대는 얼굴이”로 손보고, “되어갔다”는 “되었다”로 손봅니다.
사색(四色)
(1) 네 가지 빛깔
(2) 조선 선조 때부터 후기까지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분화하여 나라의 정치적인 판국을 좌우한 네 당파. 노론, 소론, 남인, 북인을 이른다
사색(四塞)
(1) 사방이 산이나 내로 둘러싸여서 외적이 침입하기 어려운 곳
(2) 사방이 막힘. 또는 사방을 막음
사색(死色) :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빛
- 사색이 되다 / 이미 그의 얼굴에 사색이 깃들고 있었다
사색(思索) :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짐
- 사색의 계절 / 사색에 잠기다 / 사색적인 사람 /
인생과 자연을 해석하고 사색한다
사색(辭色) : 말과 얼굴빛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사색을 드러내다 / 그는 감정을 사색에 나타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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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877) 수중
어느 여름에 문득 깨달은 것은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는 겨우 450프랑이고, 나머지는 영어를 가르쳐서 벌게 되는 돈 36프랑밖에 없었다
《조지 오웰/권자인 옮김-하얀구름 외길》(행림각,1990) 21쪽
수중에 있는 돈
→ 손에 있는 돈
→ 주머니에 있는 돈
→ 지갑에 있는 돈
→ 나한테 있는 돈
…
한자로 써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면 한자로 적어야 옳습니다. 언뜻 보기에는요. 그렇지만 우리는 한국사람이고 한국말과 한국글이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써야 아름다울까요.
물속은 ‘물속’입니다. “水中 탐사”가 아닌 “물속 탐사”요 “물속 살피기”입니다. 잠든 동안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잠든 동안’이지 ‘睡中’이 아닙니다. 나무숲에 있으면 ‘나무숲 속’일 뿐, ‘樹中’이 아닙니다.
남의 전대에 든 거금이 내 수중의 서푼보다
→ 남의 돈자루에 든 큰돈이 내 주머니 서푼보다
→ 네 돈주머니에 든 큰돈이 내 주머니 서푼보다
수중에 넣다
→ 손에 넣다
→ 품에 넣다
다른 사람의 수중에 넘어가다
→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다
→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가다
‘水中’도 ‘睡中’도 ‘樹中’도 한국말사전에서 사라져야 할 한자말입니다.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을 빛내거나 밝히는 일을 해야 아름답습니다. 4337.12.25.흙/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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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에 문득 깨달았으니 주머니에 있는 돈이라고는 겨우 450프랑이고, 나머지는 영어를 가르쳐서 벌 돈 36프랑밖에 없었다
“문득 깨달은 것은”은 “문득 깨달았으니”로 다듬고, “벌게 되는 돈”은 “벌 돈”으로 다듬습니다.
수중(手中)
(1) 손의 안
- 남의 전대에 든 거금이 내 수중의 서푼보다
(2) 자기가 소유할 수 있거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
- 수중에 넣다 / 다른 사람의 수중에 넘어가다
수중(水中) = 물속
- 수중 탐사
수중(睡中) : 잠든 동안
수중(樹中) : 나무숲 속
- 구중심처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 공주이던가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