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늘 지나가는 일본



  일본은 한국과 이웃이다. 한국은 꽤 먼 옛날 일본으로 쳐들어간 일이 있고, 일본도 얼마 앞서까지 한국으로 쳐들어온 일이 있다. 가장 가까운 발자취를 돌아볼 적에 일본이 한 짓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은 일본을 미워하기 일쑤이지만, 백제나 신라 무렵을 헤아려 보면, 그무렵 일본사람은 한국사람을 얼마나 무서워하거나 미워했을까 싶다.


  한국에는 곧잘 태풍이 지나간다. 참말 ‘곧잘’ 지나간다. 이와 달리 일본은 늘 태풍이 지나간다. 참말 ‘늘’ 지나간다. 어제오늘 또 모레와 글피까지도 지나간다는 태풍을 ‘지구별 그림날씨’로 살펴본다. 오키나와부터 훗카이도까지 태풍이 길게 일본을 덮는다. 그림날씨로만 보아도 꽤 무섭다. 이렇게 남부터 북까지 온통 태풍이 뒤덮을 수도 있구나.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은 먼먼 옛날부터 태풍을 어떻게 느꼈을까?


  그런데, 일본은 태풍만 늘 지나가지 않는다. 지진도 잦다. 화산도 곧잘 터진다. 바닷물이 크게 몰아쳐서 마을을 집어삼키는 때도 있다. 가만히 헤아려 보자. 한국에서 지진이 언제 났을까? 한국에서 화산이 언제 터졌을까? 한국에서 큰물결이 언제 마을을 집어삼켰을까?


  일본 영화나 일본 만화를 보면, ‘태풍이 온다’고 할 적에 대문과 창문을 모두 널판으로 꽝꽝 박아서 안 열리도록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붕도 굵은 밧줄로 동여매고는 땅바닥에 큰못으로 단단히 박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을까? 아예 없지 않았을 테지만 거의 없었다고 느낀다.


  일본사람이 빚은 만화나 영화나 문학을 보면 무척 놀라우면서 아름답다 싶도록 숲과 바다와 바람과 하늘과 해와 들을 노래한 작품이 꽤 많다. 아이들과 함께 보는 그림책을 볼 적에도 일본사람은 아주 놀라우면서 사랑스럽다 싶도록 깊고 너른 넋을 보여주곤 한다. 이런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런 슬기가 어디에서 솟았을까? 참으로 먼먼 옛날부터 태풍뿐 아니라 지진과 큰물결과 비바람과 무더위와 가뭄과 온갖 일을 두루 겪고 치르면서, 일본 겨레는 이녁 나름대로 숲을 바라보는 매무새가 사뭇 남다를밖에 없었으리라 느낀다.


  바람결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느끼지 못했다가는 그만 태풍에 날려가서 죽는다. 물결빛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느끼지 못했다가는 그만 바닷물에 빠져서 죽는다. 여느 때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숲이지만, 무섭게 몰아칠 적에는 그야말로 무서운 숲인 줄, 일본 겨레는 오랜 나날 온몸으로 익혔지 싶다.


  한겨레는 오늘날 어떤 넋으로 살아갈까. 한겨레는 오늘날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아갈까. 한겨레는 앞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넋이 되면서, 어떤 사랑을 씨앗으로 심는 삶을 지을 수 있을까. 4347.8.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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