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책삶 헤아리기
8. 책을 읽고 나서


  나카가와 치히로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림책을 그리는 일본사람입니다. 이분이 빚은 그림책 가운데 《내가 진짜 공주님》(크레용하우스,2001)과 《작은 새가 좋아요》(크레용하우스,2002)와 《오늘 할아버지랑 자야 한대요》(미세기,2008)가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이 가운데 《내가 진짜 공주님》은 일본에서는 ‘풀꽃공주’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왔습니다. 한국말로 옮기면서 책이름이 바뀌었어요.

  나카가와 치히로 님이 빚은 이야기책 가운데 《천사는 어떻게 키워요?》(동쪽나라,2005)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판이 끊어졌습니다. 이웃이나 동무한테 이 예쁜 책을 사서 읽어 보라 알려주고 싶어도, 새책방에서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도서관에 이 책이 있으면 빌려서 볼 수 있겠지요. 또는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다니면서 이 책이 헌책방에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

  책이름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천사를 어떻게 키워요 하고 묻습니다. 참말 어떻게 키울까요? 천사 키우기를 들어 본 적 있나요? 천사 키우기를 동생이나 동무한테 가르쳐 줄 수 있나요? 천사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책이나 인터넷에서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이야기책에서 ‘천사를 키우는 아이’는 어느 날 문득 천사를 만나서 ‘키운다’고 합니다. 아이로서는 스스로 천사를 키운다고 여길 테지만, 천사는 누구한테 키워질 수 있지 않아요. 천사는 스스로 태어났고 살았어요. 그러니까, 천사는 아이하고 동무입니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천사는 밥을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숨을 쉬고 물과 밥을 먹습니다만, 천사는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먹을 일이 없겠지요? 도깨비도 아무것도 안 먹어요.

  그런데, 천사는 한 가지가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무엇일까요. 천사한테 무엇 한 가지가 꼭 있어야 할까요.

  “들판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은 생각보다 정말 넓었습니다. 또 깊이도 아주 깊어서 땅에 착 달라붙어 있지 않으면 저 깊은 하늘로 빨려들 것 같았습니다(72쪽).”와 같이 흐르는 대목을 곰곰이 읽어 봅니다. 학교에 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볼 어린이나 푸름이가 얼마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볼 어른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너무 바쁜 탓에 하늘을 볼 겨를이 없지 않나 궁금합니다. 하늘 말고 길바닥을 내려다보아야 누군가 흘렸을는지 모를 돈이라도 주울는지 모릅니다. 아니, 오늘날에는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살피며 걸어야 합니다. 비켜서지 않고 그저 앞으로만 걷는 수많은 사람한테 안 부딪히려면 앞을 살피며 걸어야 합니다. 길 곳곳에 있는 광고판과 전봇대에 안 부딪히려면 앞을 잘 보고 걸어야 합니다. 건널목을 살피고, 이것저것 살필 것이 아주 많습니다.

  하늘은 지구별에서 파란빛으로 보입니다. 숲은 지구별에서 푸른빛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요즈음 하늘빛과 숲빛을 모두 잃습니다. 도시에서는 높다란 건물과 전깃줄과 가로등이 하늘을 뒤덮습니다. 도시에서는 아스팔트와 찻길과 아파트와 온갖 건물이 숲을 밀어냅니다. 우리들은 하늘빛을 모르는 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숲빛과 등진 채 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숨을 쉬지만, 어떤 바람을 들이켜는지 생각하지 않아요. 날마다 물을 마시지만, 정수기로 거르는 물만 알 뿐입니다. 날마다 밥을 먹지만, 밥 한 그릇이 어떤 손길을 거쳐 나한테 오는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요즈음 천사를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요즈음 천사를 헤아리는 어린이나 어른은 몇이나 될까요. 천사를 말하는 사람은 바보 같다고 여길 만한 사회이리라 느낍니다. 천사를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뚱딴지 같다고 느낄 만한 학교요 정치이며 문화이리라 느낍니다.

  그나저나 천사한테는 꼭 한 가지가 있어야 한답니다. 바로 ‘이야기’입니다. 천사는 이야기를 먹으면서 산다고 합니다. 아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운을 차리고 환하게 빛난다고 합니다. 즐겁게 이야기를 들은 천사는 ‘별똥’을 눈대요. 천사가 즐겁게 이야기를 들은 만큼 별이 새롭게 태어나서 하늘을 밝힌대요.

  어버이와 아이가 다릅니다. 여느 어른과 어버이가 다릅니다. 이웃과 내가 다릅니다. 동무와 동무도 모두 다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다른 이야기를 가슴에 품습니다. 다 다르면서 저마다 재미있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슴에 담습니다. 천사는 바로 이러한 이야기를 먹습니다. 책에서 본 이야기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내가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면서 즐겁게 가꾼 이야기를 먹습니다. 웃고 노래하며 사랑하는 이야기를 즐기는 천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천사한테 웃음 어린 이야기를 들려주면, 천사는 웃음이 가득한 별을 낳습니다. 우리가 천사한테 밝은 노래를 불러 주면, 천사는 밝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별을 낳습니다. 우리가 천사한테 따사로운 사랑을 속삭이면, 천사는 따사로운 사랑으로 빛나는 별을 낳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한결 깊이 바라보면서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듯이 서로를 바라보아요. 숲을 마주하듯이 서로서로 마주해요. 서로서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어요.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요.

  책을 읽고 나서 할 일은 언제나 한 가지입니다. 스스로 삶을 즐거우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가꾸기입니다. 스스로 즐겁게 가꾼 삶으로 이야기를 빚습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누린 삶으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스스로 사랑스레 보살핀 삶으로 이야기를 일굽니다. 4347.8.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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