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과 책읽기
태풍이 온다고 하면서 며칠 앞서부터 면사무소에서 방송을 했다. 나는 면사무소 방송을 믿지 않을 뿐더러, 날씨 방송조차 믿지 않는다. 하늘가를 바라보면서 구름결을 살피고 바람냄새를 맡아야 날씨를 알거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에 온다는 태풍은 그리 세지 않다고 미리 알아차렸다. 그러께에 온 태풍과 견주면 아무 작은 바람이라고 느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살피고 싶어서 위성사진으로 구름 움직임을 보았다. 생각했던 대로 그러께에 온 태풍보다 크기가 훨씬 작았고, 비도 그리 많이 머금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께에 온 태풍보다 작다뿐, 올들어 가장 많이 비를 뿌린다. 사흘에 걸쳐 꽤 드세게 비가 내렸다. 이리하여, 어제와 오늘 아침까지 흙물이 나왔다. 우리 집은 땅밑에서 흐르는 물을 길어올려 마시는 터라, 이렇게 비가 드세게 여러 날 이어지니, 땅밑에서 흐르는 물도 흙이 꽤 섞인 물이다. 미리 받아 놓은 물을 마시고, 이 물로 밥을 짓기는 하지만, 이틀째 맑은 물을 못 쓰니 여러모로 힘들다. 이러다가 오늘 아침에 빗줄기가 가늘어지면서 그친 뒤 몇 시간이 흐르니, 낮에 이르러 비로소 맑은 물이 나온다.
맑은 물이 나오니 얼마나 고마운지. 흙물이 나올 적에도 ‘이만 한 흙물도 다른 나라에서는 무척 고맙게 여길 테지’ 하고 생각하면서 마셨는데, 흙이 섞인 뿌연 물을 마시니 참말 입안에서도 흙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비가 오롯이 가시고 구름도 많이 걷힐까. 이튿날이나 모레부터 골짝마실을 다시 하면, 골짜기에 물이 얼마나 많이 넘칠까. 요즈음 골짝물이 많이 줄어 골짝마실 물놀이를 하면서 살짝 서운하다고 생각했더니, 이런 비가 찾아왔을는지 모르겠다.
큰비와 큰바람이 함께 찾아드니 모기도 파리도 어디론지 자취를 감춘다. 아마 모두 꽁꽁 숨겠지. 그 아이들은 작은 비바람에도 휘 날려갈 테니까. 비바람이 크게 몰아칠 적에 풀줄기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는 잠자리와 나비와 풀벌레를 제법 보았다. 비바람이 드세게 휘몰아칠 적에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와 초피나무도 엄청나게 춤을 추었다. 우리 집 나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얘들아, 이번 비바람은 그리 안 센 줄 알지? 기운을 내렴. 앞으로 너희들이 더 우람하게 자라라고 보듬어 주는 바람결이야. 4347.8.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