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28. 바람한테서 읽는 빛



  바람이 불 적에 하늘을 보면 온갖 빛과 무늬가 흐릅니다. 구름이 잔뜩 낀 날 바람이 제법 많이 분다면, 하늘빛은 그야말로 수없이 바뀌고 달라지면서 거듭나는 놀라운 빛과 무늬를 보여줍니다. 거센 비바람이 태평양을 건너올 적에 하늘을 올려다보셔요. 비를 머금은 구름빛이 새롭습니다. 새로운 구름빛은 어느새 바람에 날려 흩어지거나 사라집니다.


  아마 도시에서는 하늘이 넓게 트인 모습을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높다란 아파트와 건물이 가득하고, 어디이든 자동차가 득시글거리기 때문입니다. 높은 건물 꼭대기에 올라야 비로소 눈길이 확 트일 텐데, 높은 건물 꼭대기에 오르든 도시를 벗어나 조용한 시골로 찾아가든, 틈틈이 하늘바라기를 해 보기를 바라요. 하늘바라기를 할 적에 우리가 느끼고 맞아들이는 빛과 무늬가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갓 지은 밥을 주걱으로 퍼서 밥그릇에 담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물을 알맞게 맞추었으면 밥알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물이 질구나 싶으면 밥알이 질척거립니다. 물이 모자라다 싶으면 밥알이 뻣뻣합니다. 날마다 되풀이하는 밥짓기라 여길 수 있지만, 새로 밥을 지어 그릇에 담을 때마다 가만히 살펴보면, 밥알빛을 읽으면서 새로운 무늬와 결에 눈을 뜰 수 있습니다.


  풀잎과 꽃잎을 바라봅니다. 흙에 뿌리를 박은 풀줄기에서 돋은 풀잎과 꽃잎은 무척 싱그럽습니다. 참 예쁘구나 싶어 풀잎이나 꽃잎을 톡 끊을 수 있겠지요. 이때에 풀잎과 꽃잎은 어떤 빛으로 달라질까요. 어떤 잎이든 풀줄기에서 끊으면 이내 시듭니다. 끊은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았어도 축 처집니다.


  빛은 우리 둘레 어디에나 있습니다. 스스로 눈여겨볼 때에 빛은 환하게 퍼집니다. 스스로 눈여겨보지 못할 때에 빛은 아무 느낌도 이야기도 없습니다.


  해가 떠야만 빛이 나지 않습니다. 전깃불을 켜야 새롭게 빛을 다룰 수 있지 않습니다. 젓가락 끝에도 빛이 있고, 옷자락 한쪽에도 빛이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읽으려고 할 때에 빛을 읽습니다. 마음 깊이 샘솟는 빛을 찍으려고 할 때에 빛을 찍습니다.


  바람한테서 빛을 느낄 수 있으면 바람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구름한테서 빛을 느낄 수 있으면 구름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랑하는 짝꿍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으려면, 사랑하는 짝꿍이나 동무한테서 빛을 느껴야 합니다. 내 어머니나 아버지를 사진으로 찍으려면, 먼저 내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샘솟는 빛을 느껴야 합니다. 빛을 느껴서 즐겁게 우리 가슴에 담아서 이루는 이야기가 사진입니다. 4347.8.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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