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고단한 하루
곁님이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 지 보름이 되었다. 보름 동안 나는 아이들과 어떻게 지냈을까? 즐겁게 오순도순 놀았을까? 놀기도 했지만, 곁님이 없는 동안 집안을 치워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이제껏 늘어놓은 책들을 치우려고 무던히 용을 썼는데, 이럭저럭 치우기는 했지만 아직 꽤 남기도 했고, 힘이 많이 빠졌다. 오늘은 하도 몸이 힘들다고 느껴, 영화를 하나 틀고는 마룻바닥에 드러누워 한 시간 즈음 쉬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고단함은 안 풀린다. 왜 안 풀릴까. 나 스스로 고단함을 불러들였을까.
몸을 씻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아차 아이들부터 씻기자고 마음을 바꾼다. 작은아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다. 큰아이를 씻기며 옷을 갈아입힌다. 두 아이가 벗은 옷을 빨고 내 몸을 씻는다. 비바람이 몰아치다가, 이제 빗줄기가 듣는다. 마당에 놓은 평상은 가림천으로 덮었다. 슬슬 저녁밥을 차려야지 싶다. 그러고 보니, 어제와 오늘 ‘며느리밑씻개’ 풀줄기를 사진으로 찍으려고 했다가 깜빡 잊었다. 늘 보는 풀이니 다음에 언제이든 찍겠지 하고 생각한 지 벌써 몇 달째인가. 참말, 아주 흔한 풀일수록 외려 더 사진으로 못 찍는구나 싶다.
우리 집에서 돋는 며느리밑씻개 풀에 꽃이 피기 앞서 얼른 사진을 찍자. 그러고 나서, 머잖아 꽃이 피면 또 꽃 사진을 찍어야지. 기운을 내자. 기지개를 켜자. 가슴에 파란 거미줄 그림을 그리자. 4347.8.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