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27. 가고 싶어서 간다



  여름에 바다로 가는 사람은 참말 바다로 가고 싶으니 갑니다. 겨울에 바다로 가는 사람은 참으로 바다로 가고 싶으니 갑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있기에 여름이든 겨울이든 바다로 갑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없으면 누가 자가용에 태워 데려다 주더라도 못마땅하기 마련이요, 즐거움이나 재미를 못 누리기 일쑤입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없을 적에는 노래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아닐 적에는 글 한 줄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아니라면 따스한 볕이나 시원한 바람을 살갗으로 못 느낍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담고 싶다는 마음이 우러나와야 하고, 사진 한 장으로 담아서 보여주고픈 마음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나입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늘 나입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맨 먼저 읽습니다. 내가 찍으려는 사진을 내가 가장 먼저 읽습니다. 나부터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으면서 삭히고 다시 삭히며 거듭 삭힌 사진을 이웃한테 보여줍니다. 내가 스스로 한 번 찍고 두 번 찍으며 세 번 찍으면서 가다듬고 추스르며 어루만진 사진을 동무한테 보여줍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갑니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몸이 흐릅니다. 마음이 우러나오는 대로 사진이 우러나옵니다. 무엇을 골라서 사진으로 찍느냐 하는 대목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이 되어 사진을 찍으려 하느냐 하는 대목을 살피면 됩니다. 어떤 장비를 갖추어 사진을 찍느냐 하는 대목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눈빛으로 거듭난 뒤 사진을 찍느냐 하는 대목을 돌아보면 됩니다.


  꽃 한 송이를 찍을 수 있습니다. 꽃밭을 찍을 수 있습니다. 꽃대를 찍을 수 있습니다. 꽃잎에 앉은 나비나 파리나 벌이나 잠자리를 찍을 수 있습니다. 꽃이 질 무렵 찍을 수 있습니다. 시멘트 틈바구니에서 돋은 꽃을 찍을 수 있습니다. 떨어진 꽃씨를 찍을 수 있고, 꽃씨를 물어 나르는 개미를 찍을 수 있으며, 꽃내음 맡는 아이를 찍을 수 있습니다. 꽃내음 흐르는 마을을 찍을 수 있고, 꽃내음이 퍼지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찍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는 마음인지 읽고 삭혀서 찍으면 언제나 사진이 됩니다. 4347.7.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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