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이 끊어진 책을 읽는 아이
아이는 ‘책’을 읽는다. 일곱 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이 아이가 네 살 적이든 두 살 적이든 여섯 살 적이든 늘 똑같다. 이 아이는 그저 ‘책’을 읽는다. 아이로서는 저한테 가장 재미나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운 ‘책’을 골라서 읽는다. 판이 끊어져서 몹시 드문 책인지 아닌지 따지지 않는다. 비싼 책인지 값싼 책인지 헤아리지 않는다. 그저 즐겁게 ‘책’을 손에 쥐어 읽는다.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 이름’이나 ‘출판사 이름’을 가리지 않는다. 이 작가라서 더 좋아하거나 저 출판사라서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작가가 어떤 일을 했건 안 했건 대수롭지 않다. 저 출판사가 아름다운 일을 하건 못난 짓을 하건 대단하지 않다. 아이로서는 오직 제 손에 쥔 ‘책’만 보일 뿐이요, 생각할 뿐이며, 마음에 담을 뿐이다.
참말 그렇다. 어느 책을 읽을 적에는 어느 책에 깃든 넋을 읽는다. 어느 책을 누가 썼는가를 따질 일이 없다. 어느 책에 서린 빛을 읽으면 된다. 이를테면 서정주 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구수하게 쓴 시에는 구수한 빛이 서릴 테지. 전두환이나 박정희를 섬긴 시에는 독재정권한테 해바라기를 하던 넋이 감돌 테지.
아이가 그림책을 읽는다. 나도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다. 아이가 글을 읽는다. 아이가 글을 읽을 줄 아니, 그림책에 적힌 글월 가운데 바로잡거나 고칠 대목을 미리 손질한다. 아이와 함께 빛을 읽고 싶다. 아이와 함께 넋을 살찌우고 싶다. 아이와 함께 오로지 ‘책’을 ‘삶’을 ‘사랑’을 읽고 싶다. 4347.7.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