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골짜기에서 물놀이를 하는 동안 읽을까 하고 시집을 챙기지만, 시집을 꺼낼 틈이 없다. 아이들과 마을 어귀 샘터에 나가 샘터와 빨래터에 낀 이끼를 걷어낸 뒤 숨을 돌리면서 읽을까 하고 시집을 또 챙기지만, 시집을 들출 겨를이 없다.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마실을 가는 길에 버스에서 한 줄이라도 읽으려고 가방에 시집을 넣지만, 참말 한 줄이라도 돌아볼 말미를 못 낸다. 그래도 아침저녁을 차리면서 밥과 국이 끓는 사이에 한 줄 읽는다. 뒷간에서 똥을 누며 두 줄 읽는다. 아이들과 낮잠을 자려고 하면서 자장노래를 부른 뒤 슬며시 석 줄 읽는다. 큰아이가 그림책을 읽으며 놀 적에 조용히 넉 줄 읽는다. 《칼》이라는 시집을 선보인 안명옥 님은 언제 시를 썼을까. 안명옥 님은 이녁 시집을 장만해서 읽을 사람들이 언제 어디에서 읽으리라 생각할까. 두 아이는 잠들고 풀벌레 노랫소리가 온 집안을 감돈다. 조용하면서 호젓한 기운이 흐른다. 아이들이 잠들었으니 불을 켤 수 없고, 그저 나즈막하게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스스로 시를 쓰고 스스로 시를 읽는다. 4347.7.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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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 지음 / 천년의시작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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