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힘 - 개정판 지혜사랑 시인선 69
반칠환 지음 / 지혜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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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3



멧새가 깃드는 집

― 웃음의 힘

 반칠환 글

 지혜 펴냄, 2005.9.26.



  낮에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워 우체국에 다녀오려고 했더니 비가 옵니다. 저런, 오늘 우체국에 못 가겠네 하고 생각하는데, 비가 곧 그칩니다. 그러나 하늘은 꾸물거립니다. 곰곰이 날씨를 헤아립니다. 비가 그쳤다 싶은 이때에 얼른 자전거를 몰아 우체국에 다녀올는지, 아니면 우체국에 갈 일을 비가 그칠 때까지 미룰는지.


  멀리 하늘을 바라볼 적에 한 시간쯤은 괜찮지 싶습니다. 마당에 자전거를 내놓습니다. 작은아이가 마루에서 놀다가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얼른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누나를 부르면서 함께 자전거 타자고 합니다.



..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  (노랑제비꽃)



  아이들은 놀이터에 가거나 바다에 가거나 골짜기에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씨에는 어디에도 가기 어렵습니다. 얘들아, 오늘은 어디에도 가기 어렵겠구나. 아침에 차려 놓은 밥을 아이들이 몇 숟갈 안 떴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잘 먹었으면 면소재지 빵집에라도 들렀을 테지만, 우체국에만 들릅니다. 아버지가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치는 동안 두 아이는 우체국 마당에서 땀이 나도록 뛰어놉니다.


  면소재지 놀이터에 가자는 아이들 말에 고개를 젓습니다. 저기 하늘을 보렴. 오늘은 비가 쏟아질 듯하니 못 가겠구나.


  신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자전거를 제자리에 놓고 마당을 살짝 치웁니다. 아침부터 자그마한 멧새 예닐곱 마리가 우리 집 마당에서 놉니다. 내가 가까이에 가도 멀리 날아가지 않습니다. 기껏 후박나무 가지 사이로 숨습니다.



.. 남산 산책로, 오래된 나무들이 자꾸만 제 이름을 까먹는지 사람들이 이름표를 달아 주고 있었다 ..  (경력으로 안 되는 일)



  몸을 씻고 빨래를 한 뒤 밥을 새로 차릴까 생각하다가, 몸만 씻고 밥을 새로 차립니다. 감자와 양파와 햄과 마늘을 물로 지진 뒤에 찬밥을 비벼서 양념을 합니다. 이러면 몇 숟갈 뜨려나.


  어제 낮 고흥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바깥마실을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면 하루나 이틀쯤 밥맛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채근하거나 닦달할 수 없습니다. 으레 예닐곱 시간쯤 차에 시달리는 만큼, 어젯밤 느긋하게 잤어도 아직 몸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아이들한테 낮밥을 새로 차려서 주고는, 복복 빨래를 합니다. 아이들이 어제 벗은 옷을 찬찬히 비벼서 빨래합니다. 아직 빗방울이 듣지 않기에 마당에 내다 넙니다. 아이들이 어느 만큼 밥을 먹을 즈음 빗방울이 듣습니다. 한 시간조차 바깥에서 말리지 못하고 집안으로 옷가지를 들입니다.


  이제부터 빗소리가 굵습니다. 비는 시원하게 내립니다. 지난해 여름을 돌이켜봅니다. 지난해에는 참말 비가 안 오는 남녘 여름이었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얼마나 더웠는지, 또 얼마나 가물었는지, 또 골짝물이 얼마나 가늘게 흘렀는지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 ..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반칠환 님 시집 《웃음의 힘》(지혜,2005)을 읽었습니다. 2012년에 고침판이 나왔다고 합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일산에 있는 치과에서 이를 고치고 시외버스를 달려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읽었습니다.


  책이름을 생각합니다. 웃음은 힘이 있습니다. 웃음으로 삶에 힘을 얻습니다. 웃음 한 자락으로 사랑에 새롭게 힘을 담습니다. 깔깔 호호 웃으면서 밥을 맛나게 짓고, 하하 히히 웃으면서 밤마다 느긋하게 잠자리에 듭니다.



.. 치악산 능선마다 / 새똥, 곰똥, 달팽이 오줌 / 다 씻어 내린 계곡물이 / 맑다 ..  (시치미)



  헌 고무신을 들고 처마 밑에 섭니다. 빗물이 주르르 흐르는 곳으로 가려니, 작은 멧새 한 마리가 우리 집 처마에서 비를 긋다가 포로롱 날아갑니다. 처마 밑에서 뒤꼍 감나무 아래쪽으로 갑니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에 헌 고무신을 헹굽니다. 우리 집 복숭아나무가 올해에는 키를 얼마나 키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바라봅니다. 해가 떨어지는데, 처마 밑 제비집에 제비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 집 제비들은 모두 씩씩하게 크기는 했는데, 어디까지 갔을까요. 벌써 중국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을 텐데, 어디에서 비를 그으면서 날개를 말릴까 궁금합니다. 시골마을마다 끔찍하게 치는 농약을 쐬지 않았기를 빕니다. 다른 제비집에서 쉬든지, 숲에서 쉬면서, 차근차근 몸을 돌보면서 지내기를 빕니다.


  그러고 보면, 작은 멧새 들은 우리 집 빈 제비집을 노리는지 모릅니다. 지난겨울에는 참새 두 마리하고 딱새 두 마리가 빈 제비집에 깃들면서 겨울을 났어요. 아직 칠월이지만, 작은 멧새는 빈 제비집에서 쉬고 싶을는지 몰라요. 빈 제비집에서라면 깃을 포근하게 쉬면서 새롭게 기운을 차릴는지 몰라요. 우리 집 마당에서 즐겁게 웃으면서 놀다가, 빈 제비집에서 즐겁게 잠들다가, 후박나무에서 열매와 애벌레를 먹으면서 즐겁게 새 하루를 누릴는지 모릅니다. 4347.7.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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