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과 표현력


  지난날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학교를 다니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난날에는 학교란 데가 없기도 했어요. 그러면 옛날 글꾼은 어떻게 글을 썼을까요? 삶을 가꾸면서 글을 썼어요. 날마다 하루를 새롭게 짓고, 밥이며 옷이며 집이며 스스로 지으면서 글을 썼어요. 예전에는 삶도 밥도 집도 살림도 글도 생각도 스스로 지었습니다.

  들과 숲에서 풀을 뜯으며 글을 씁니다. 멧골에서 나무를 하며 글을 씁니다. 아이를 낳고 돌보며 글을 씁니다.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을 골고루 누리거나 마주하면서 글을 씁니다.

  지난날에는 상상력이라든지 표현력 같은 말을 안 썼습니다. 그저 글을 써서 나누었을 뿐이요, 이야기를 오순도순 주고받았습니다. 기나긴 날에 걸쳐 슬기와 사랑을 가다듬어 삶글을 이루고 빛글을 낳아 물려주었어요. 그러니까, 작품이 되도록 하거나 문학이 되게끔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저마다 이녁 삶에 비추어 들려주고 이녁 말씨로 밝혔어요.

  스스로 늘 삶을 지으니 생각도 늘 짓습니다. 생각힘, 곧 상상력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늘 삶과 밥과 집을 지을 뿐 아니라 말을 지으니 말힘, 곧 표현력을 근심하지 않습니다.

  참말 예전에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말을 스스로 지었습니다. 바로 사투리입니다. 오늘날에는 삶도 밥도 집도 말도 스스로 짓지 않고 학교만 다니고 책만 읽습니다. 오늘날에는 새로 짓는 삶이 깃든 새로운 말이 태어나지 못하고 새 글이 좀처럼 태어나지 못해요.

  문학이 나오고 대학교 문예창작학과가 생기며 문학강의가 넘칩니다. 그러나 삶을 밝히거나 가꾸려는 빛은 자리를 잃어요. 글은 늘 삶을 담았으나, 학문이나 예술이나 문화나 문학이 되면서 삶을 잃거나 등집니다. 노래가 되지 못하고 이야기로 뻗지 못하니 오늘날 문학은 어린이책에서도 어른책에서도 표현력만 자꾸 따져요. 상상럭이 없으니 억지로 쥐어짜요. 가장 쉽고 사랑스러운 길에서 그예 멀어지기만 합니다. 4347.7.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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