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63] 토끼풀과 나비

―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곳



  어릴 적에 제가 가장 오래 살던 곳은 다섯 층짜리 아파트입니다. 이 아파트에 살기 앞서 인천에서 온갖 골목집을 떠돌았다고 하는데, 주민등록 초본에만 이러한 발자국이 남고, 내 머릿속에는 몇 가지 일을 빼고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릴 적 살던 다섯 층짜리 아파트에는 계단만 있고 연탄으로 불을 땝니다. 겨울을 앞두고 집집마다 연탄을 들이느라 부산해요. 1층집은 1층에 연탄을 두면 되지만 5층집은 5층까지 연탄을 쌓느라 늘 애먹어야 했습니다.


  다섯 층짜리 작은 아파트는 동마다 꽃밭이 퍽 넓게 있습니다. 아파트 넓이만큼 꽃밭이 꼭 있습니다. 꽃밭이 아니어도 빈터에는 흙이 쌓이고 시멘트가 깎여 풀밭이 됩니다. 풀밭이나 흙밭이 된 곳은 우리들 놀이터입니다. 잠자리와 나비를 잡고, 토끼풀을 고르면서 놀았어요.


  시골마을에서 토끼풀은 무척 흔합니다. 논둑이나 밭둑에서도 잘 자라고 빈터에서도 잘 자랍니다. 토끼풀에서 꽃이 피어나면 벌과 나비가 모여듭니다. 흰나비와 노랑나비도 몰려들고, 부전나비와 제비나비도 찾아듭니다.


  집에서도 토끼풀꽃과 나비를 바라봅니다. 대문 바깥 마을 들판에서도 토끼풀꽃과 나비를 만납니다. 가만히 지켜봅니다. 나비는 팔랑팔랑 날다가 살포시 내려앉습니다. 나비가 날갯짓을 그치고 꽃송이에 내려앉을 적에도 소리가 나겠지요? 사람 귀에는 도무지 들리지 않을 만큼 조그마한 소리가 나겠지요?


  나비가 내려앉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어떠할까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그윽할는지, 얼마나 살가우면서 보드라울는지 생각해 봅니다.


  풀꽃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이 느긋합니다. 풀꽃에서 노는 나비를 바라보는 동안 몸이 넉넉합니다. 풀꽃과 함께 내 마음은 푸르게 흐르고, 나비와 함께 내 넋은 가볍게 움직입니다.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란 사랑스러운 곳이 되리라 느낍니다. 즐겁게 마주할 수 있는 곳이란 아름다운 곳이 되겠다고 느낍니다. 따로 꽃밭을 가꾸어도 좋을 테지요. 그러나 풀밭만 있어도 좋습니다. 넓게 꽃밭을 만들어도 재미있을 테지요. 그렇지만 너른 빈터에 풀이 스스로 어깨동무하면서 자라나서 고운 풀내음을 나누어 주면, 풀벌레와 벌나비가 찾아들면서 푸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4347.7.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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