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776) 급하다急 2 : 급하게 자라는
그러나 우리 부부에겐 민서가 자라나는 속도가 정상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좀 급하게 자라는 것뿐이지요
《추둘란-콩깍지 사랑》(소나무,2003) 52쪽
다른 아이들이 급하게 자라는 것뿐
→ 다른 아이들이 일찍 자랄 뿐
→ 다른 아이들이 빨리 자랄 뿐
→ 다른 아이들이 바삐 자랄 뿐
→ 다른 아이들이 서둘러 자랄 뿐
…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놓고 “급하게 자란다” 하고 말하기도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흔히 하는 말이 “빨리 자란다”가 아닐까요. 보기글에서는 장애가 있다는 아이가 자라는 빠르기를 장애가 없다는 아이가 자라는 빠르기하고 견줍니다. 이럴 때라면 “일찍 자란다”나 “먼저 자란다”를 써도 어울릴 만합니다. 4340.1.10.물/4347.7.2.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러나 우리 부부한테는 민서가 자라나는 빠르기가 딱 맞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좀 바삐 자랄 뿐이지요
‘속도(速度)’를 써도 나쁘지 않으나 ‘빠르기’로 다듬으면 한결 나아요. ‘정상(正常)입니다’는 ‘딱 알맞습니다’나 ‘가장 좋습니다’로 다듬을 수 있어요. “자라는 것뿐이지요”는 “자랄 뿐이지요”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998) 급하다急 3 :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 서울에서 친척이 피란 왔다더니 그 아이인 게로구나.” 나는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호-할아버지의 뒤주》(사계절,2007) 147쪽
나는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
안 바빠도 되는데 너무 바쁘게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안 서둘러도 되는데 지나치게 서두르며 사는 분들이 있어요. 너무 바삐 지내면, 또 지나치게 서두르면, 될 일은 안 되고 안 될 일은 더 꼬이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과 글 또한, 바쁜 나머지 함부로 중얼거린다면, 서두르면서 아무렇게나 뇌까리면, 제 빛깔을 잃고 흐리멍덩 지푸라기가 되어 사라질밖에 없습니다.
나는 바쁜 나머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바빠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였다
바쁘더라도 조금 더 마음을 쏟으면 좋겠습니다. 서둘러야 하더라도 아주 자그마한 틈을 내어 새롭게 힘을 쏟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살리는 작은 빛이 넋을 살리면서 삶을 살립니다. 4340.11.8.나무/4347.7.2.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오라, 서울에서 친척이 왔다더니 그 아이인가 보구나.”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리를 피하여 옮겨 감”을 뜻한다는 한자말 ‘피란(避亂)’입니다. 어른들은 이런 한자말을 씁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런 말을 둘레에서 들으면서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 글월에서는 “피란 왔다더니”를 “왔다더니”나 “옮겨 왔다더니”로 손질해 줍니다. “그 아이인 게로구나”는 그대로 둘 수 있지만 “그 아이인가 보구나”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23) 급하다急 5 : 급해
“급해! 우선 당나라 사신이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아야 해.” … 금오는 얼른 바위 뒤로 몸을 숨겼어요
《배유안-분황사 우물에는 용이 산다》(파란자전거,2010) 85쪽
급해!
→ 바빠!
→ 서둘러!
→ 어서!
→ 빨리!
…
보기글을 보면, 앞쪽에서는 ‘급해’라 적고, 뒤쪽에서는 ‘얼른’이라 적습니다. 바위 뒤로 얼른 몸을 숨긴다고 하는데, 이러한 몸짓처럼 당나라 사신이 묵는 곳을 얼른 찾아내려고 움직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서둘러 어떤 곳을 찾는다고 하면 됩니다. 빨리 찾거나 어서 찾자고 해도 됩니다. 4347.7.2.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서둘러! 먼저 당나라 사신이 묵는 곳을 찾아야 해.” … 금오는 얼른 바위 뒤로 몸을 숨겼어요
“묵고 있는 숙소(宿所)”는 “묵는 곳”으로 다듬습니다. 한자말 ‘숙소’는 “묵는 곳”을 뜻합니다. 겹말입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우선(于先)’을 찾아보면 “어떤 일에 앞서서. ‘먼저’로 순화”로 뜻풀이를 합니다. 그러니까, ‘우선’이라는 한자말은 한국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린이책에 넣는 낱말이라면 아주 마땅히 한국말 ‘먼저’를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