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6. 어디에서나 만나는 꽃


  어디에서나 만나는 꽃입니다. 어디에서나 만나는 하늘입니다. 어디에서나 만나는 사랑입니다. 어디에서나 만나는 빛입니다. 어디에서나 만나는 웃음입니다. 그리고, 어디에서 만나는 눈물이고 슬픔이며 괴로움입니다. 어디에서나 만나는 노래이고 춤이면서 삶입니다.

  더 나은 삶이나 덜 좋은 삶이 없습니다. 더 나쁜 삶이나 덜 궂은 삶이 없습니다. 어느 삶이든 모두 삶입니다.

  티벳에 가야 더 나은 사진을 얻지 않습니다. 네팔이나 부탄에 가야 더 맑은 사진을 얻지 않습니다. 몽골이나 스리랑카쯤 되어야 빛이 나는 사진을 얻지 않아요.

  사진은 남녘에서도 찍고 북녘에서도 찍습니다. 사진은 한국에서도 찍고 중국에서도 찍으며 일본에서도 찍습니다.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아름답구나 싶은 사진을 얻고, 서울 서교동이나 동교동에서도 얼마든지 사랑스럽구나 싶은 사진을 얻습니다.

  사진은 마음으로 찍습니다. 사진은 기계로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기계를 빌어 마음으로 찍습니다. 기계가 꼭 있어야 찍는 사진이 아니고, 기계가 대단해야 잘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마음이 있어야 찍을 수 있는 사진이요,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통영을 사랑하면서 통영에서 뿌리를 내리는 사람은 통영에서 통영빛이 물씬 피어나는 사진을 곱게 찍습니다. 순천을 사랑하면서 순천에서 뿌리를 내리는 사람은 순천에서 순천빛이 그득 흐르는 사진을 밝게 찍습니다.

  밀양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강정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대추리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배다리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찍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내가 ‘임자’가 되는 자리에서 찍습니다. 그런데, ‘임자가 되는 삶’을 새롭게 바라보며 찍기도 해요. 이를테면, 로버트 프랭크 같은 사람은 ‘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사랑하는 삶’이 아닌 ‘자동차를 장만해서 기나긴 길을 떠돌며 사랑하는 삶’을 찾아나서며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로버트 프랭크 같은 사람은 기나긴 길을 떠돌았는데, 이녁은 기나긴 길을 떠돌았어도 ‘사랑하는 삶’이 있었기에 이녁 삶빛을 밝히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삶이 무엇인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이 무엇인가 하고 바라보면서 삶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바라보고 느낀 삶을 가슴으로 담으면서 차근차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에 사진이 시나브로 태어납니다.

  옆을 둘러보셔요. 어디에서나 꽃이 핍니다. 들꽃은 어디에서나 핍니다. 사람이 씨앗을 뿌리지 않아도 들꽃은 참말 봄 여름 가을 겨울 골고루 예쁘게 핍니다. 사람들 스스로 들꽃을 눈여겨보지 않으니 꽃이 있는 줄 못 느낄 뿐입니다. 사진으로 찍을 빛은 참말 우리 둘레에 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빛을 보려고 할 때에 볼 수 있고, 보려고 하면서 느끼고 알아차리려 할 때에 사진기 단추를 누를 수 있습니다.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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