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49. 유월에 대문을 열면 2014.6.11.



  유월에 대문을 열면 물이 찰랑이는 논이 있다. 사름빛이 고운 논이다. 대문 앞에 있는 논은 제법 깊다. 우리 집 앞에서 보면 조그맣구나 싶지만, 마을 안쪽까지 깊숙히 닿는다. 옛날에는 이 논에 손으로 모를 심고 손으로 낫을 쥐어 나락을 베었으리라. 이제는 기계로 모를 심고 기계로 나락을 거둔다. 쟁기를 얹은 소가 땅을 갈지 않고 기계가 땅을 간다. 옛날이라면 땅을 갈고 모를 심으며 풀을 뽑고 나락을 베는 노래가 마을에 가득 넘쳤을 텐데, 이제는 온통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뿐이다. 그래도, 기계가 한 차례 훑고 지나가면 조용하다. 기계소리 아닌 개구리소리가 퍼진다. 개구리를 잡으려고 왜가리와 해오라기가 찾아온다. 개구리는 모기와 풀벌레를 잡으려고 우리 집으로 폴딱폴딱 들어오곤 한다. 밤에는 우리 집 마당에까지 와서 노래를 들려준다. 대문을 열면 푸른 빛이 왈칵 몰려들고, 대문을 열지 않아도 온 집안에 푸른 내음이 물씬 감돈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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