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까는 헌책방
헌책방지기 할아버지가 콩을 깐다. 책손을 기다리면서 콩을 깐다. 처음 헌책방이 문을 열 적에 어떤 책손이 찾아왔고, 오늘은 어떤 책손이 깃드는가를 헤아리면서 콩을 깐다. 콩깍지는 책방 바닥에 놓는다. 콩알은 자루에 담는다. 푸른 빛깔로 잘 익은 통통한 콩알은 헌책방지기 할아버지 손을 거쳐 자루로 들어가는데, 헌책방을 그득 채운 책을 가만히 둘러본다. ‘우리는 어느 곳에 와서 무엇을 구경할 수 있을까?’ 하고 콩알이 서로 속닥속닥 이야기꽃을 피운다.
콩내음이 책방에 퍼진다. 콩빛이 책시렁에 번진다. 콩을 까던 손길로 내가 고른 책을 받으시고, 콩내음이 묻은 손길로 책값을 셈하신다. 내가 고른 책마다 콩내음과 콩빛이 서린다. 4347.6.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