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굽는 팔



  팔이 안으로 굽지 않으면 팔을 펴지 못하고 쓰지 못해요. 참말 그렇지요. 예부터 팔은 안으로 굽는다 하고 말한 까닭이 있어요.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들은 어릴 적에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했어요. ‘칫. 팔만 안으로 굽나? 발도 안으로 굽는걸. 손가락과 발가락도 안으로 굽는걸. 모두모두 안으로 굽는걸.’


  어릴 적에 이렇게 ‘팔’을 ‘발’과 ‘손가락’으로 바꾸어 생각하고 보니, 모든 것이 그러했어요. 귀도 안으로 굽어요. 그래야 소리가 나한테 스며요. 입도 안으로 굽어요. 그래야 말이 터져서 나와요.


  안으로 굽어야 하는구나 하고 느낄 적에, 내 동무들이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나를 따돌리거나 괴롭힐 적에 하나도 안 힘들었고 하나도 안 슬펐어요. 힘듦이나 슬픔을 느낄 일이 없이 ‘안으로 굽는 마땅한 흐름’을 알고 보며 느꼈어요.


  나도 ‘안으로 굽는 팔’처럼 내 곁님과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곁님과 아이들이 배고플 적에 밥을 차리고, 즐거울 적에 함께 노래하며, 고단할 적에 다독이면서 안거나 업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려면 안으로 굽어요. 밥을 우리 안에 담지요. 우리 몸 안쪽으로 밥을 담으면서 새로운 숨결이 태어나고, 새로운 기운이 솟으며,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즐겁게 내 팔을 바라봅니다. 안으로 굽는 내 팔을 기쁘게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즐거움과 기쁨을 잊습니다. 안으로 굽는 팔은 그저 안으로 굽으니, 나는 이 빛을 그대로 느끼며 바라볼 뿐입니다.


  팔한테 다른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안으로 안 굽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아니, 내 팔한테 안으로 굽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내 팔을 사랑하는 길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내 팔을 아끼면서 언제나 내 삶으로 곁에 있는 길을 조용히 헤아립니다. 내 팔에 고운 빛을 뿌리렵니다. 안으로 굽는 내 팔에 맑은 빛을 드리우렵니다. 안으로 굽으면서 살며시 펴고, 또 굽으면서 살펴시 펴는 내 팔에 착한 빛을 하나둘 심으렵니다. 굽기에 펴고, 펴기에 굽습니다.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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