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 사진책을 외국배송으로라도 구경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이분 사진책을 만날 길이 없다.

아마존에서는 구경할 수 있으리라.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71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사람

― Stone in the road, photographs of Peru

 누바 알렉사니안(Nubar Alexanian) 사진

 Cornerhouse pub 펴냄,1991



  사진을 찍으려고 페루를 찾아가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페루를 마음에 품고 찾아가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페루는 어떤 나라이기에 사람들 눈길을 끌까요. 페루는 어떤 삶터이기에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을까요.


  사진을 찍으려고 페루를 찾아간 사람은 페루를 찍습니다. 내 눈에 비친 페루를 찍고, 스스로 마음에 담은 모습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찍습니다. 페루는 사진쟁이 앞에 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사진쟁이는 자그마한 모습 하나라도 놓칠세라 바지런히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누군가는 이레쯤 머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달포쯤 머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반 해쯤 머물고, 누군가는 한두 해쯤 머뭅니다. 누군가는 대여섯 해를 머물고, 누군가는 열 해나 스무 해를 눌러앉습니다. 아예 페루사람이 되어 서른 해나 쉰 해, 때로는 일흔 해를 페루에서 지냅니다.






  이레쯤 머물면서 찍은 페루란, ‘어떤 페루’가 될까요. 쉰 해쯤 살면서 찍은 페루는, ‘어떤 페루’가 되나요. 사진을 찍고 싶어서 찾아간 페루라면 ‘어떤 페루’가 되고, 홀로 마을과 숲길을 거닐면서 느낀 페루일 때에는 ‘어떤 페루’가 될는지요.


  누바 알렉사니안(Nubar Alexanian)이라는 분이 페루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은 《Stone in the road, photographs of Peru》(Cornerhouse pub,1991)라는 책을 들여다봅니다. 1950년에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난 이녁은 1978년부터 1989년까지 페루를 아홉 차례 밟습니다. 그러고는 1991년에 사진책 하나를 조촐히 선보입니다. 사진책 앞자락에서 “What will their loss mean for the rest of us?” 하고 묻습니다.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 삶에 페루는 무엇을 뜻할까요. 지구별에서 페루는 어떤 나라일까요. 서양 문명은 페루에서 어떤 일, 또는 어떤 짓을 했을까요. 오늘날 페루는 어떤 눈빛으로 삶을 가꾸는가요.


  페루로 찾아가서 페루라는 나라를 밟기에 페루를 찍습니다. 페루로 찾아가지 않으나 한국이나 미국에서 살아가며 페루를 찍습니다. 그곳에 있을 때에는 으레 그곳에서 눈으로 보는 대로 찍고, 그곳에 없을 때에는 마음으로 그곳을 생각하면서 찍습니다.





  사진은 눈으로 본 대로만 찍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려면 먼저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마음으로 느끼지 않고서는 사진을 못 찍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찍으려 하면, 먼저 이 나무를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나무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면 마당에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채지 못하고, 알아채지 못하니 볼 수 없어요. 마당을 찍으면서 사진에 나무를 담지 못해요.


  페루로 찾아갔다 하더라도 페루를 못 찍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리마에 있는 공항에 내려서 페루라는 나라를 두 발로 밟았어도, 페루라는 곳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으면, ‘페루에서 본 미국’이나 ‘페루에서 본 한국’을 찍을 뿐입니다. ‘페루를 느낄 수 있는 페루’를 사진으로 찍으려면, 먼저 페루를 페루대로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지구별 이웃을 사진으로 찍겠다고 한다면, 지구별 이웃이 누구인가를 느껴야 합니다. 지구별 이웃이 어디에서 살아가는지를 느껴야 하고, 지구별 이웃이 저마다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느껴야 합니다. 지구별 이웃한테 즐거움과 기쁨과 슬픔과 아픔이 무엇인지 느껴야 하고, 지구별 이웃한테 사랑과 꿈과 노래와 춤이 무엇인지 느껴야 하지요. 웃음과 눈물을 고루고루 느끼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느낄 적에 비로소 글도 한 줄 쓰고, 그림도 한 장 그립니다.






  돈이 있으면 누구나 페루로 찾아가겠지요. 돈이 있으면 누구나 값진 사진기를 장만하겠지요. 그런데, 돈만 있대서 페루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을까요? 못 찍지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페루를 찍고, 한국을 찍으며, 미국을 찍습니다. 퍽 자주 미국을 드나든다 하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미국을 사진으로 못 찍어요.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간다지만, 마음이 없으면, 정작 내가 한국사람이면서도 한국을 못 찍어요. 서울이 고향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서울이 어떤 모습인지를 사진으로 못 찍습니다. 아름다운 시골이 고향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아름다움과 시골을 사진으로 못 찍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없기에 못 느끼고 못 보며 못 알아보거든요.


  사진을 찍으려면 마음속에 맑은 넋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넋을 맑게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이웃을 나란히 사랑하면서 서로 좋아하는 꿈을 키울 때에, 비로소 사진기를 손에 쥘 만합니다. 너와 나를 한몸으로 아끼면서 즐거이 어깨동무하려는 몸짓이 아닐 적에는 사진기를 손에 쥘 만하지 않습니다.


  따사로이 바라볼 수 있고, 따뜻하게 손을 맞잡을 수 있는 매무새일 때에, 마음으로 느낍니다. 마음으로 느끼면, 이때부터 페루이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사진으로 찍습니다. 마음으로 못 느끼면? 마음으로 못 느끼면 ‘작품’이나 ‘예술’이나 ‘기사’나 ‘기록’으로 사진을 만들는지 몰라도, 사진을 들여다볼 이웃한테 푸른 숨결을 불어넣지 못합니다.


  바람이 붑니다.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 한국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페루로 흐릅니다. 바람이 붑니다. 한들한들 바람이 불어 페루에서 대서양을 가로질러 유럽과 터키와 네팔과 중국을 지나 한국으로 흐릅니다. 4347.5.20.달.ㅎㄲㅅㄱ




Nubar Alexanian is a documentary photographer whose worked has been featured in major magazines in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including The New York Times Magazine, Life, Fortune, GEO, Time and Newsweek. For the past 35 years he has travelled to more than 30 countries focusing on long term personal projects which describe the human condition. In 2008 he completed his fifth book, "NONFICTION" PHOTOGRAPHS BY NUBAR ALEXANIAN FROM THE FILM SETS OF ERROL MORRIS, (Walker Creek Press) a 15 year collaboration with filmmaker Errol Morris. Solo exhibitions of this work have been shown at The Walker Art Center, The Corcoran Gallery of Art, Caren Golden Fine Art Gallery (NYC) The Atlanta Contemporary Art Center, The LOOK3 Festival, and Clark University.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