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 그늘이 짙다. 그런데 독재정권은 정치로만 독재가 아니다. 경제로도 독재이며, 문화와 교육으로도 독재이다. 사상과 철학으로도 독재인데, 독재는 총칼을 든 독재로 그치지 않는다. 연필과 종이를 든 독재 또한 무시무시하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한손에 농약병을 든 독재가 있고, 다른 한손에는 비닐과 비료를 든 독재가 있다. 가만히 보면, 평화로운 곳에는 우두머리가 없다. 아름다운 곳에는 임금님이 없다. 사랑스러운 곳에는 대표나 대통령 같은 이들이 없다. 모두 똑같은 사람이니, 한둘이나 몇몇이 앞에 나서서 마을이나 모임을 이끌 일이 없다. 모두 똑같이 살림을 알뜰살뜰 가꾸니, 한둘이나 몇몇이 앞장서면서 경제라느니 정치라느니 문화라느니 교육이라느니 사상이라느니 철학이라느니 종교라느니 하면서 떠벌일 까닭이 없다. 먼먼 옛날부터 지구별 어느 곳에서나 시골마을 작은 집에서 평화와 사랑과 꿈을 아름답게 가꾸었다. 책 한 권 없이 아이들을 슬기롭게 가르치던 사람들이다. 책 한 권 없이 말이며 삶이며 똑똑히 가르치던 사람들이다. 책 한 권 없이 풀과 나무를 모두 꿸 뿐 아니라, 벌레와 물고기와 짐승을 모두 알던 사람들이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오늘날 사람들은 학교와 학원과 책과 인터넷으로 온갖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지만, 막상 스스로 집을 짓지 못하고 옷을 깁지 못한다. 요리책을 집에 안 두면서 밥을 지어 먹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새로운 독재’는 ‘새로운 대통령’ 한 사람만 가리키지 않는다. 새로운 독재가 우리 삶터 어느 곳까지 속속들이 파고들어 좀먹는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4347.5.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