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에 떨어진 후박꽃



  엊그제 비가 드세게 몰아치면서 후박꽃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졌다. 마당은 온통 후박꽃투성이가 된다. 수천 송이가 떨어졌을까. 아마 수천 송이가 됨직하다. 어쩌면 만 송이가 넘을는지 모른다. 그윽한 냄새를 나누어 주던 후박꽃이 이렇게 많이 떨어지니 서운하지만, 후박나무로서도 꽃을 어느 만큼 떨구어야 열매를 알맞게 맺으리라 본다. 감나무도 감꽃을 엄청나게 떨구지 않는가. 바야흐로 이레쯤 지나면 감꽃이 여물 듯한데, 감꽃 피는 밑에서 감꽃을 하나하나 주워서 먹을 생각을 하니 침이 고인다.


  마을 샘터를 치울 적에 쓴 플라스틱 그릇을 평상에 두었다. 비가 지나고 난 뒤 빗물이 고였고 후박꽃이 이 그릇에 퐁퐁 떨어졌다. 그릇에 고인 물을 비우려다가 한동안 들여다본다. 후박나무에서 떨어져 빗물에 잠긴 꽃송이가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따라 가볍게 물결이 일면서 하늘하늘 움직인다.


  옛날에는 어느 집에서나 이런 모습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보며 살았겠지. 흙마당 한쪽에 빗물이 고이면서 꽃송이가 그런 둠벙이나 웅덩이에 떨어졌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내 어릴 적에도 사월이나 오월에 비가 드세게 몰아친 이튿날이 되면, 곳곳에 생긴 웅덩이에 꽃잎이 수북하게 떨어져서 새삼스럽게 고운 빛을 보여주던 일이 떠오른다.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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