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벚꽃과 이승복 동상



  왕벚꽃이 흐드러지는 커다란 나무 곁에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 선다. 나무가 먼저 이곳에 있었을까, 동상이 먼저 이곳에 있었을까. 둘 모두 같은 때에 이 자리에 섰을까. 동상은 더 자라지 않는다. 동상은 비와 바람과 햇볕을 받으면서 해마다 차츰 낡고 닳는다. 나무는 동상과 달리 날마다 새롭게 자란다. 처음에 동상은 햇볕도 많이 받고 비바람도 많이 먹었을 텐데, 곁에서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면서 햇볕을 가려 주고 비바람도 그어 준다.


  왕벚나무는 동상 옆으로 뿌리를 뻗을 테지. 왕벚나무는 동상한테도 고운 꽃내음을 나누어 줄 테지. 동상은 무엇을 할까. 이 동상은 왜 ‘반공소년 이승복’이라는 이름을 얻어야 했을까.


  시골마을에 조용하게 열어 문을 닫은 작은 학교 운동장 한켠에 선 나무와 동상을 한참 바라본다. 나무와 동상은 앞으로도 이곳에 그대로 있을까. 앞으로 쉰 해쯤 지나면, 또 오백 해쯤 지나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할 수 있을까. 4347.5.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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